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추천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김성현 기자가 음악학자 이경분 선생님의 책 ‘수용소와 음악’에 대해서 소개해드립니다.

이경분의 '수용소와 음악'(왼쪽부터)과 '망명 음악, 나치 음악'. 나치의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 불렸던 음악들을 담은 음반 '테레진'.

‘수용소와 음악’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시는지요.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공간인 수용소와 삶의 표현 방식인 음악이 맞부딪치면서 격렬한 파열음을 내는 것만 같습니다. 음악학자 이경분 선생님이 최근 펴낸 ‘수용소와 음악’은 제목처럼 1~2차 세계 대전 당시 수용소에서 연주됐던 음악을 살펴본 학술서입니다.

이경분 선생님은 20세기에서도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꼽히는 2차 대전 시기의 예술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있는 음악학자입니다. 고교 독일어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서 독문학과 음악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계시지요. ‘수용소와 음악’ 역시 ‘망명 음악, 나치 음악’ ‘프로파간다와 음악’ 같은 전작들의 연장선에 있는 후속작입니다. 1차 대전 당시 일본 수용소의 사례를 통해서 폭을 넓혔고, 나치 수용소 정책의 허실을 날카롭게 파헤쳐서 깊이를 더했지요. 탈냉전의 시대에 냉전 이전의 시기를 돌아보는 일은 자칫 과거지사로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절반도 공부하지 않으면서 갑절로 목소리만 높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직업적 성실성과 끈기가 돋보이는 노작(勞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는 지금의 체코 북부인 테레진(당시 테레지엔슈타트)에 유대인 강제 수용소를 세웠습니다. 이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 예술가들이 음악과 연극, 강연과 낭독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요. 전쟁 말기인 1944년 나치는 국제적십자 사찰단에게 이 수용소를 공개하면서 대대적인 홍보 활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당시 나치의 선전에 넘어간 국제적십자 사찰단은 수용소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했을 뿐 아니라, 다음 사찰 장소로 계획에 잡혀 있던 아우슈비츠 방문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혹시라도 당시 사찰단이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참상이 조금이라도 일찍 알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이처럼 수용소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중성을 지닌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연구하거나 서술할 때에도 무척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렇게 많은 지식인, 예술가, 유명인들이 모여 수준 높은 문화 활동이 가능했던 까닭에 테레지엔슈타트에 대한 서술은 쉽지 않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테레지엔슈타트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 H. G. 아들러도 말했듯이, 표면적인 현상 뒤에 짓누르는 끔찍한 잔인함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수용소와 음악’ 109쪽)

동화 작가이자 시인 일제 베버(1903~1944)

저자의 말처럼 수용소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행복했다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보는 편이 솔직하겠지요. 그 가운데 한 분이 체코 출신의 유대인 동화 작가 일제 베버(1903~1944)입니다. 그는 1942년 테레진 수용소로 강제 이송된 뒤, 어린이 병동의 간호사로 일하면서 적지 않은 노래를 남겼습니다. 2년 뒤 그는 아우슈비츠로 이송됐지요. 결국 그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일제 베버가 다시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 연기로 나와 하늘로 흩어질 때였다. 일제 베버는 불안해하는 아이들 곁에서 어머니처럼 위로해주고 끝까지 함께했다.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앞에서도 노래와 행동으로 인간의 존엄을 보여주었다. 태어난 연도와 출생지는 다르지만, 일제 베버의 사망지와 사망 연월은 파벨 하스, 한스 크라사, 빅토르 울만, 라파엘 쉐히터 등의 음악가들과 똑같이 ‘아우슈비츠, 1944년 10월’이었다.”(‘수용소와 음악’ 167쪽)

일제 베버의 시와 노래, 편지는 당시 살아남은 남편 덕분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편이 ‘테레지엔슈타트를 방황하다(Ich wandre durch Theresienstadt)’라는 노래이지요. 노래의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테레지엔슈타트를 걷는/내 가슴은 납처럼 무거워/이 길이 끝나는 곳/그 곳은 바로 요새 앞.” 이 노래를 들을 적마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게 됩니다. 오늘은 지휘자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유롭스키의 피아노 반주와 소프라노 나데즈다 굴리츠카야의 음성으로 들어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