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땅속에서 쏟아져 나온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과 물시계 부품,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銃筒) 등의 공통점은 모두 금속 유물이라는 점. 이 중 금속활자와 물시계 부품은 도기 항아리에 담긴 채 발견됐고, 나머지 유물들은 항아리 주변에서 출토됐다. 활자를 제외하면 모두 일정한 크기로 일부러 부러뜨린 채 묻은 것으로 확인됐고, 활자 중 일부는 불에 타 엉겨 붙어있는 상태로 나왔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72번지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에서 문화재청, 수도문물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유적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최초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 조선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 등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뉴시스

누가 도대체 왜 서울 종로 한복판에 금속 유물을 모아서 파묻은 걸까. 발굴 지점은 피맛골과 인접한 인사동 79번지.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 경제·문화 중심지인 견평방(堅平坊)에 속했지만, 유물이 출토된 곳은 당시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민가의 창고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나온 유물들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들이 아니라서 미스터리”라고 했다.

연구원 측은 “출토된 금속품이 모두 순동(구리)에 가까워 당시 상당히 비싼 금속이었다”며 “누군가 금속품을 나중에 녹여서 다른 물건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고의로 파묻은 것”으로 추정했다. 오 원장은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이기 때문에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었다가 급한 일이 생겨서 다시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며 “예를 들면 1592년 임진왜란 같은 전란으로 인해 꺼낼 수 없게 된 게 아닐까 추정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