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네티즌이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20) 선수가 급진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하며 사이버 테러를 저지른 사건이 다시 남성 혐오(남혐) 대 여성 혐오(여혐)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안 선수가 남혐 단어로 지목된 여러 용어들을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썼다. 이 글을 두고 논객 진중권씨가 “잘못은 안 선수에게 있었다는 얘기냐”며 “국민의힘이 아니라 남근의힘이냐”고 비판하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나서서 진씨에게 “적당히 하라”고 댓글을 달며 논쟁에 불이 붙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이 대표가 안산 선수 메달을 취소하라는 (네티즌의) 공격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라”며 가세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연예인 구혜선은 여성을 응원한다며 ‘쇼트커트 인증샷’을 올렸다. 안산을 지지한다는 취지였다. 안 선수는 머리를 짧게 자른 이유가 ‘편해서’라고만 했다. 또 실제로 페미니스트라고 하더라도 이게 한국인이 한국 국가대표에게 금메달 박탈을 요구해야 하는 사안일까. 이념·계층·지역·세대에 이어 새로운 한국 사회 화약고가 된 성별 갈등 문제에 관련한 자극적인 혐오 발언만 부각되면서 소모적인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관왕 안산 귀국 - 대한민국 양궁 여자대표팀 안산(20)이 올림픽 일정을 마치고 1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로 입국하고 있다. 이날 입국장 앞엔 500명 이상의 팬들과 취재진이 몰렸다. 팬들 사이에서“안산 파이팅”“안산 언니 사랑해”등 그의 입국을 환영하는 외침이 잇따랐다. 안산은 혼성 단체와 여자 단체, 개인전까지 3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올림픽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국 선수론 최초의 하계올림픽 3관왕이 됐다. /장련성 기자

◇정확한 근거 없이 일단 낙인찍고 공격

이번 사건의 전개 양상은 지난 5월 벌어졌던 ‘GS25 남혐 포스터 논란’과 닮은꼴이다. 당시에도 남초 커뮤니티에서 GS25의 포스터에 나온 손 모양 등 여러 이미지가 ‘메갈’이라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쓰는 남성 혐오 표현과 동일하다고 주장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일부에선 과거 GS25의 포스터를 뒤져서 비슷한 이미지가 나온 걸 모아 ‘GS25는 메갈 기업’이라며 불매운동을 벌였다. 결국 GS25는 포스터를 수정하고 수차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남초 커뮤니티의 승리로 끝난 모양새였다.

이번에도 사건의 발단은 남초 커뮤니티 ‘MLB파크’ ‘에펨코리아’ 등이었다. 일부 회원이 안 선수가 과거 “웅앵웅” “오조오억” 같은 단어를 썼던 게시물을 찾아 올리며 “급진 페미니스트가 자주 쓰는 단어를 쓰는 걸로 봐선 같은 부류”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안 선수가 여성 팬이 많은 걸그룹 ‘마마무’ 팬이니 페미니스트라는 글은 추천 수가 3000회를 넘었다. 다수 회원이 페미니스트는 퇴출되어야 한다”며 기사에 악플을 달고, 대한체육회에 수차례 전화를 걸거나 심지어 “금메달을 박탈해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한국 국가대표의 메달을 박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GS25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지엽적 몇몇 표현을 확대해석해서 일단 ‘급진 페미니스트’라고 낙인찍은 뒤 선수 본인이 압박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공격한 사이버 테러였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정확한 근거 없이 안 선수를 ‘남혐’이라고 규정하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GS25 사건 때 효과적이었던 방식 그대로 공격했다가 이번엔 낭패를 본 것”이라고 말했다.

◇남혐과 여혐이 서로 갈등 증폭시켜

남초 커뮤니티의 이런 행태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가 벌인 ‘남혐’ 운동에 대한 반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혐 운동은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남성의 각종 한심한 행태를 빗댄 용어를 만들어 조롱하는 행위. 여성 혐오를 거울로 반사한다는 의미를 담아 ‘미러링(mirroring)’이라고도 부른다. 지금 안 선수를 두고 벌어진 사건의 배경을 보면 전체 여성 중 극히 일부가 벌이는 미러링이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남성 다수의 감정적 반발을 키우고, 그 남성 중 일부가 거기에 대항해 ‘남혐 표현’을 색출해 응징하는 식으로 갈등이 점점 증폭하는 구조가 있다.

이번에도 안 선수의 인스타그램 사진에 한 외국 네티즌이 “머리를 왜 그렇게 짧게 자른 것이냐”고 남긴 댓글에 일부 여성이 “질문의 의도가 뭐냐” “한국 남자 문제 있다”며 반발했고, 다른 남성들이 안 선수를 급진 페미니스트라고 의심하며 증거를 찾겠다고 나서면서 일이 커졌다. 여성학자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은 “일부 남초 사이트가 (메달 박탈 등)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자 일부 여성은 온라인에서 해당 발언을 공유하면서 ‘남자들 다 저래’라고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익명성에 숨은 소수 입장이 과잉 대표되면서 벌어진 촌극”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