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8월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은 단편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했다. 일제 시대 조선의 암담한 현실에 주인공은 절망해 술을 벗 삼는다. 밤마다 자신을 타박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말한다.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100년이 지난 지금 사회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권하고 있을까. 행복 주택·도시, 행복페이, 행복카드 등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나 정책에 ‘행복’이란 낱말을 붙이는 사회. 누구나 행복을 바라고 행복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불행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울증·조울증 등 기분장애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6년 약 77만명에서 지난해 100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확행’(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 ‘힐링’ ‘욜로’(현재 행복이 가장 중요) 등 행복을 나타내는 신조어들이, 사실은 “가짜 행복”을 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을 말하는 데 왜 자꾸 불행해지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는 오늘도 근사한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도배된다. 수영장 딸린 고급 호텔에서 여가 활동을 보내고, “플렉스”(돈자랑)를 외치며 명품과 고급 자동차를 소유한 자신을 전시한다. 이런 ‘자랑질’은 요즘 유행하는 행복론에 충실한 모습이다.
학자들은 요즘 유행하는 행복을 쾌락주의 행복론과 물질주의 행복론의 결합으로 본다. “심리적으로 쾌감을 느끼면 그게 곧 행복”이라는 게 쾌락주의고, “쾌감을 위해선 소비를 통해 물질을 얻어야 한다”는 게 물질주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상품이 되면서, 행복을 파는 장사꾼과 산업이 생겼다. 행복 산업은 상품을 소비하면 곧바로 ‘소확행’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하고, 돈을 써서 한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것을 ‘욜로’라는 말로 쿨하고 멋지게 포장한다. 그러나 쾌감으로 행복해진다는 믿음은,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쾌감에 중독되면 자꾸 허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스테이크를 처음 먹을 때는 행복하다. 그런데 비슷한 음식점에서 같은 메뉴만 먹게 되면 쾌락은 점점 시들시들해진다. 더 좋은 레스토랑에서 더 비싼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가진 시간과 돈은 한정적이다. 갈수록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니, 행복이 어려워질 수밖에.
소셜미디어에서 행복은 자랑과 비교의 대상이 된다. 이에 친숙한 20대 젊은 층은 고통을 받는다. 지난해 국내 우울증 환자 가운데 20대는 약 17만명(17%)으로, 처음으로 60대 환자 수를 넘어서며 모든 연령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심각해지는 취업난과 더불어 소셜미디어의 전시 문화를 꼽았다. 뉴욕 뉴스쿨대학 철학과 교수 사이먼 크리츨리는 “소셜미디어가 자살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며 젊은이들이 “수동적으로 구타당하는 상태”라고 진단한다. 그는 “소셜미디어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게 하고 당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행한 것은 네 탓이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주관주의’ 행복론이 고개를 든다. 각종 행복 글귀나 격언을 통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행복해진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또다시 하면 돼. 다 그렇게 살아. 산다는 건 멋진 일이지’ ‘울지 말기, 아파하지 말기, 반드시 더 많이 행복하기’ 등 무턱대고 삶을 찬양하며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정신 승리’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 왜곡과 도피를 조장하는 인공 행복”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쾌감 아닌 보람이 곧 행복”
‘진짜 행복’은 어때야 할까.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행복은 쾌감이 아닌 건전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과 만족감”이라고 정의한다. 보람과 만족은 목표와 목적을 향해 달릴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인간은 가족·친구·사회와 분리돼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삶의 목적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향할 때 의미가 있다. 예컨대 정비공은 자신의 생계를 넘어 타인의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직업적 소명을 가질 때 보람이 생긴다. 땀 흘리며 힘든 자원봉사를 할 때에도 행복할 수 있다. 혼자 잘 먹고 잘산다고 사람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누구나 세상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어야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이니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행복론
행복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듯, 행복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다. 요즘 심리학자들은 행복 강요하는 사회에 반기를 들고 행복에 중독된 사회를 비판한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기존 통념을 전복하고 “행복을 좇으면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행복의 역설을 주장한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상의 권력이 된 행복’을 비판한다. 행복이 개인을 넘어 기업과 국가의 목표로 격상되면서 겁을 먹어야 하는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행복의 평범성’을 강조하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닌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평범한 보통 사람은 밥 먹고 일하며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는 건 고통이지만, 고통을 극복하면 반드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며 “의미와 목적을 가진 사람은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두둑한 보험을 가진 셈”이라고 말했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진화론의 관점으로 “행복은 생존에 필요한 도구일 뿐”이라 주장하며 행복의 위상을 낮춘다.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은 것이 아니라, “행복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살아남은 감정”이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인간이 음식을 먹거나 이성을 만날 때 “행복하다”는 느낌을 경험해야 또다시 사냥에 나서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행복은 거창한 관념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자주 느끼면 좋은 감정이 된다. 서 교수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도움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저서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저서 ‘아주 보통의 행복’),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저서 ‘행복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