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전황바람에 몇곱씩 남겨먹던 ‘피아노’를 월세로 주는 데가 있다. 그래서 그러한지 바늘 구멍만한 대문으로 피아노를 몰아넣다가 ‘스피ㅡ드’내외가 대문을 헐고서 끌어들이는 피아노광(狂)이 있다. 천당도 헐고 들어가면 지구덩이째 들어갈 수있을 듯ㅡ’( 조선일보 1931년 6월24일 ‘락타가 바눌 구멍으로’, 파란 글씨를 클릭하면 옛날 기사를 볼 수있습니다.)
만문만화가 안석주(1901~1950)는 대문을 헐어서라도 피아노를 들여놓으려는 모던 부부의 허영심을 풍자했다. 당시 피아노 한 대는 평범한 샐러리맨 1년치 월급과 맞먹었다. 값이 워낙 비싸다보니 월부 판매도 유행한 모양이다.
안석주가 궁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월부까지 마다않고 사들인다고 꼬집은 피아노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이 꿈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비싼데다 고급스러운 피아노는 서구와 근대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칠 줄도 모르면서 피아노 들여놓고, ‘온 집안이 환한 듯’
도쿄와 상하이에서 공부한 ‘유학파’ 현진건은 스무살이던 1920년 12월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소설가로 떠오르기 시작한 1922년 11월 월간지 ‘개벽’에 ‘피아노’란 단편소설을 실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주인공이 중등학교를 나온 신여성과 신식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리는 내용이다. 둘은 피아노를 칠 줄 모르면서도 거금을 들여 피아노를 구입한다.
‘훌륭한 피아노 한 채가 그 집 마루에 여왕과 같이 臨御하였다. 지어미 지아비는 이 화려한 악기를 바라보며 기쁨이 철철 넘치는 눈웃음을 교환하였다.’ 아내가 ‘마루에 무슨 瑞氣가 비친 듯 하다’고 하자 남편은 ‘참 그래. 온 집안이 갑자기 환한 듯 한걸’하고 감탄한다. 한 해전 ‘빈처’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며 이름을 얻은 현진건의 촌철살인이 담겨있다. 피아노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이 꿈꾸는 ‘이상적 가정에 필수적인 물건’이었다.
◇결혼하면 떠오르는 것, 다이아몬드 반지, 양옥, 피아노...
교과서에 실린 수필 ‘청춘예찬’으로 유명한 민태원(1894~1934)이 1921년 문예지 ‘폐허’에 발표한 단편 ‘음악회’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여주인공 숙정은 동경 유학생과의 만남을 앞두고 행복한 결혼을 상상한다.
‘비단 옷, 시체(時體·신식) 양복, 금강석 반지, 자동차 탄 젊은 내외, 양옥집, 앞뒤로 둘린 정원,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 안석주 만문만화가 나오기 10년 전, 피아노는 이미 모던 걸의 ‘스위트홈’에 빠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피아노에 맞춰 흐르는 독창 아니면 유성기판 재즈쯤은 들려 나와야’
1929년 9월 대중잡지 ‘별건곤’은 경성의 이색지구를 소개하면서 ‘문화촌’의 일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文化村이라면 소위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 문화생활이라면 松板쪽을 붙여놓았더라도 집은 신식 양옥으로 지어 놓고 피아노에 맞춰 흐르는 독창 소리가 아니면 유성기판의 재즈밴드 소리쯤은 들려 나와야 하고 지붕 위에는 라디오 안테나가 가로걸쳐 있어야 할 것은 물론이어니와 하루에 한번씩은 값싼 것일망정 양요리 접시나 부서야 왈 문화생활이라고들 한다.’
신식 양옥과 피아노, 유성기, 라디오 안테나, 그리고 하루 한번 서양 음식을 먹어야 문화생활 좀 한다고 얘기할 수있다는 것이다.
◇처녀 꾀는 수단인 문화주택, 피아노
피아노가 주는 환상은 대단했다. 안석주의 만문만화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조선일보 1930년1월12일)는 다리를 광고판처럼 쓰는 모던 걸의 소망을 풍자한다. 문화주택에 ‘피아노 한채만 사주면’ 일흔 살 노인도 괜찮다는 내용이다. 당시 상품화된 연애·결혼 풍속도를 보여주는 이 만화에서도 결혼 필수품으로 피아노가 거론된다. 남성중심적 편견이 담기긴 했지만, 이쯤되면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신식·근대·부를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피아노는 신문 사회면 기사에도 등장했다. 목포에 사는 열여덟살 처녀를 유인해 선금 200원을 받고 평양 카페에 팔아넘기려다 적발된 사건이었다. 범인은 “서울에 가서 공회당에서 결혼하고 문화주택에서 음악공부하며 살게 해주겠다”는 미끼를 던졌는데, 이 기사 제목이 ‘처녀를 꾀는 수단인/문화주택 피아노’(조선일보 1934년10월4일)였다.
일본 유학생조차 변변한 직업을 찾을 길 없는 100년 전 경성에서 피아노를 살 만한 능력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피아노가 집집마다 들어오게 된 것은 산업화의 과실을 본격적으로 누리게 된 1970년대부터였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선망의 대상에서 중산층의 값비싼 교육, 문화 수단을 거쳐 아파트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애물단지로 바뀐 피아노의 변천이 무상할 뿐이다.
◇참고자료
현진건, ‘피아노’, 개벽 1922년 11월호
민태원, ‘음악회’, 폐허2호,1921년
신명직, ‘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 현실문화연구, 2003
조윤영, ‘경성의 음악회(1920~1935)’, 이화여대 박사학위 논문, 2018
이경분, ‘일본 식민지 시기 서양음악의 수용과 그 정치적 의미’, 한국음악학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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