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아이들 학교에서 하는 기부 모금이 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금 며칠 전부터 첫째 아이가 ‘아픈 친구들을 돕고 싶다’며 온 집안의 동전을 샅샅이 찾아 모으더라고요. 평소에 조금씩 채우던 돼지 저금통도 깨고요. 우리 가족에겐 기부가 자연스러운 일상입니다.”

◇돌잔치 비용 모아 첫 기부

대구시 수성구에 사는 곽윤주(43)씨는 첫째 아이 최지우(9)양을 임신했을 때 자신과 약속을 했다. “여러 차례 유산을 겪으면서 8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지우를 가졌을 당시, ‘배 속 아이를 건강하게 만나게 해준다면 내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돕겠다’고 매일 다짐했어요.” 건강하게 지우가 태어났을 때, 곽씨는 남편 최탁수(47)씨에게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최씨도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남편은 늘 ‘해야지’ 생각만 했던 일을 제가 먼저 말을 꺼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최탁수씨·곽윤주씨(위 왼쪽부터) 부부가 아들 은우군과 딸 지우양(아래 왼쪽부터)과 함께 대구 수성구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씨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아갈 때 아이들이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부부는 상의 끝에 지우의 돌잔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돌잔치에 들어갈 비용과 친지·지인의 축하금을 모아 아이 이름으로 600만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둘째 은우(8)군의 첫돌 때도 잔치를 생략하고 아이 이름으로 200만원을 기부했다. 그 이후에도 부부는 매년 아이들의 생일이 찾아올 때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100만원의 일시 후원금을 냈다. 2015년부터는 부부의 이름으로 월 2만원씩, 아이들의 이름으로 월 2만원씩 정기 후원도 시작했다. 정기 후원금과 일시 후원금 등 네 가족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한 돈은 2760만원에 달한다. 부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한 후원 외에도 미혼모 재단에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첫돌을 맞이한 아이가 있으면 아이의 돌 사진 앨범이나 성장 앨범을 제작하는 비용을 건넨다. 설·추석이나 크리스마스 때에는 햄 통조림 등 선물 세트나 작은 화분을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 생일 선물은 ‘기부 확인서’

아이 생일 즈음에 기부하는 100만원은 처음엔 부부가 다 냈지만 약 2년 전부터는 아이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아이들은 명절이나 생일 때 받는 용돈을 차곡차곡 저축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1년간 열심히 모은 돈에 부부가 돈을 보태 기부금 100만원을 만든다. 매년 아이들의 생일 선물은 ‘기부 확인서’다.

아이들이 기부에 동참하게 된 것은 어머니 곽씨의 영향이 컸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우양과 은우군도 ‘생일 선물로 장난감을 받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곽씨는 아이들에게 “아픈데도 돈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는 친구들이 있다”고 천천히 설명해줬다. “아이들이 심부름을 하거나 집안일을 도와줄 땐 500원, 1000원씩 용돈을 줘요. 그 돈은 아이들이 일해서 번 돈이니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주죠. 하지만 ‘노동의 대가’로 받은 게 아닐 경우에는 온전히 아이들 돈이 아니라 어려운 친구들, 아픈 친구들과 나누는 돈이라고 얘기해줘요. 설에 받는 세뱃돈 같은 돈 말이죠.”

이제는 오히려 아이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기부에 동참해서 곽씨가 놀랄 때가 있을 정도다. 생일 선물로 기부 증서를 줄 때 아이들은 투정 대신 “내가 1년 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아픈 친구를 도와줬다”며 뿌듯해한다. “지난번 첫째의 생일 때 아이의 할머니께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어요. 그런데 아이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저한테 와서 ‘엄마, 이 돈은 힘든 친구들 위해서 기부할래요’라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큰 돈일 텐데, 선뜻 기부금으로 내주는 아이가 대견했어요.” 최근 영어 학원에서 기부 물품을 받는다고 할 때도 지우양과 은우군은 집에 있는 통조림과 즉석밥을 모아 양팔 가득 안은 채로 등원했다.

곽씨는 베푸는 일은 곧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누고 살아야 우리 아이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힘으로 기부할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 꾸준히 함께 기부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