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에서 ‘오’를 ‘머’로 바꾸면 무슨 소리가 될까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가 대답한다. “꽥꽥.” “정답은 머리예요.” 지난 17일 첫 방송을 한 EBS ‘문해력 유치원’의 한 장면. 유치원 입학 테스트였다. 아이들은 “모자, 우산, 우유 중에서 첫소리가 다른 하나는 뭘까요?” “4개 그림에서 넥타이는 무엇일까요?”와 같은 음절·어휘력 시험을 통해 문해력을 측정한다.
EBS는 앞으로 13주간 방송에서 2016년에 태어난 유아들을 대상으로 유치원을 열고 문해력을 키우는 커리큘럼을 적용해 교육 효과를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EBS 관계자는 “지난 8월 참여 아동 모집에서 2080명이 지원해 유아기 언어발달에 대한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해력 유치원’은 지난 3월 6부작으로 방송된 ‘당신의 문해력’의 후속 프로그램.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수업에서 학생들이 ‘가제(假題)’를 ‘랍스터’로 착각하고, ‘난(亂)’과 같은 기본적인 어휘의 뜻을 모르는 장면이 방송돼 화제가 됐다. 방송은 스마트폰으로 글자보다 영상을 보는 데 익숙해진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문해력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방송 내용은 지난 8월 같은 이름의 책으로도 만들어져 현재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사흘 연휴’라는 기사 제목에서 3일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인 ‘사흘’을 몰라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쓰나”라는 댓글 항의와 함께 해당 단어가 검색어 1위에 오르는 세상. 문해력의 원래 뜻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었지만,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까지 의미가 넓어졌다고 방송은 설명한다. ‘당신의 문해력’을 기획한 김지원 EBS PD는 “문해력이 높을수록 높은 성적과 연봉을 받을 가질 가능성도 커지지만 무엇보다 문해력은 한 사람의 자존감과 직결된다”고 했다.
영상 시대에도 복잡하고 정교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여전히 문자이며, 영상이 이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문해력은 국어를 비롯해 모든 과목에서 필요한 기초적인 학습 능력으로 그려진다. 디지털 기기는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이 문해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권장된다.
문해력 열풍에 비판적인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교사이자 미디어 연구자인 박유신씨는 최근 인문 잡지 ‘권위’에 발표한 ‘당신을 위한 문해력’이란 글에서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문해력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며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문자 기반의 어휘력과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는 ‘어휘’ ‘문장 독해’ ‘시험문제 풀이’ 등 백과사전식 암기나 활자를 해독하는 능력보다, 온라인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의 진위를 의심하고 사실을 가려내는 ‘미디어 문해력’ 교육이 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