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드라마 ‘설강화’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드라마가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를 미화했다는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30만명 넘게 참여한 데 이어, 부정적 여론에 놀란 기업들의 광고·협찬 취소가 이어졌다. 방송사 홈페이지에는 드라마 폐지 요구 글이 약 3000건 올라왔고, 방송통신심의위에는 21일 오전까지만 심의 요구 민원이 740여 건 제기됐다. ‘설강화’는 올 3월 시놉시스가 유출됐을 때도 같은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 드라마를 보면 오해가 풀릴 거라더니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성급한 드라마 폐지 주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8일 방송된 '설강화' 1화에서 유학생 위장 간첩 수호(정해인)와 여대생 영로(지수)가 처음 만나는 장면. 안기부 요원들에게 쫓기던 수호가 여대 기숙사에 뛰어들면서 로맨스가 시작된다. /JTBC

드라마는 1987년 대선 정국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여대 기숙사에 유학생으로 위장한 간첩 ‘임수호’(정해인)가 피투성이가 돼 뛰어들고, 시위 중 부상으로 오인한 여대생 ‘은영로’(지수)가 그를 숨기고 치료해주며 싹트는 로맨스가 기본 줄거리. 여기에 남북 대치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군사정권 정보기관의 음모가 블랙코미디처럼 섞여 있다. ‘대세 배우’ 정해인에 K팝 그룹 ‘블랙핑크’ 멤버인 지수가 출연해 화제였다.

부정적 여론이 번지자, 민감한 기업들이 먼저 발을 뺐다. 배우 정해인이 모델인 치킨 프랜차이즈 푸라닭을 비롯, P&J 넛츠쉐이크 등 제작 지원 업체들은 ‘정해인과 지수가 주인공인 것만 보고 섣부른 결정을 했다’는 사과문을 내며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숙박앱부터 신발 회사 등 협찬사들도 줄줄이 협찬 중단 의사를 밝혔다.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민주화운동과 간첩, 안기부를 엮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가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1987년 시대 상황을 소재로 사용해 놓고,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만 봐달라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며 “창작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방영을 계속하면 그에 따른 책임도 분명히 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직 1·2화만 방영됐는데 드라마 폐지를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 지난 ‘조선구마사’ 폐지 사태의 반복이 된다면 창작자 입장에선 심각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공론장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다. 대화와 협의, 설득의 과정이 없으니 계속 아니면 폐지, 양극단의 선택밖에 없다고 여기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JTBC는 21일 입장문을 통해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대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는 18일 방송된 1화가 전국 시청률 2.34%(TMNS기준)였지만, 논란이 커지면서 다음 날 방송된 2화는 3.2%로 오히려 시청률이 상승하며, 이날 종편 프로그램 중 4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