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 완전 개방된 청와대는 대지 면적이 25만㎡에 달한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연합뉴스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핫 플레이스는 청와대다. 지난달 10일부터 국민 50만명이 다녀갔다. 청와대 본관과 관저 내부도 공개됐다. 본관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2층 대통령 집무실에 올라가 셀카를 찍는다. 창문(방탄 유리)이 활짝 열린 관저에서는 밖에서 침실을 감상할 수 있다. 경복궁역 주변 보행량은 4배나 치솟았다. 청와대 관람 신청자는 600만명에 이른다.

이런 흥행 숫자가 청와대 개방의 성공을 보증하진 않는다. 그 공간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스터 플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역사 교육 공간? 근대 미술관? 국가 대표 도서관? K팝 공연장? 담장 밖에서는 청와대의 쓸모에 대한 제안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이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문화 예술계의 청와대 활용법 중 의미 있는 제안들을 정리해본다.

청와대, 이렇게 활용하자

◇최고의 역사 교육 현장

조선 시대에 경복궁 후원이었고 일제강점기엔 조선 총독의 관저였다. 경무대로 불리다 4·19 혁명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름을 바꿨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청와대 인근은 1883년 백열등이 처음 켜지는 등 근대화 사업이 처음 시작된 곳”이라며 “대통령 기념관을 짓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근현대사의 영욕을 품은 청와대가 역사 교육의 장소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남희숙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사견을 전제로 “청와대의 역사성을 살리려면 박물관 겸 교육 현장으로 되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한 공간은 그대로 현장을 개방하고 춘추관·영빈관 등은 현대사 전시 공간이나 만찬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문화를 통한 국민 통합을 학습하기에도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도서관·미술관은 어떤가?

유종필 전 국회도서관장은 “지식과 정보는 국력이자 행복의 원천이 된다. 선진국일수록 그 상징인 도서관에 품격과 존경심을 부여한다”며 “청와대를 국가 대표 도서관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건물 네 채가 책을 반쯤 펼친 모습으로 파리 센 강변에 지어진 프랑스 국립도서관,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 떠난 런던 킹스크로스역 근처에 뉴 밀레니엄 기념 사업으로 만든 대영 도서관 등이 그 모델이다.

청와대에 걸려 있던 미술품은 거의 다 떼서 따로 보관 중이고, 어떻게 할지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근처 문화 시설과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국립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한다면 ‘미술 클러스터’가 조성될 수 있다”며 “야외 공간을 적극 이용할 시 조각 미술 공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K팝과 한류 플랫폼으로

세계적 콘서트홀을 만들어 서울시향 등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안(건축가 김원)이 나왔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새 건물을 지어야 하고 막대한 세금이 들어 찬반 논란을 뚫어야 한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가보면 알겠지만 청와대는 건축물로도 공간으로도 국가 수준에 안 맞게 허름하다. 본관이나 영빈관에서 작은 실내악 공연은 할 수 있다”며 “조경이 훌륭하기 때문에 야외 축제 공간으로는 적합하다”고 말했다.

월드디제이페스티벌, 서울파크뮤직페스티벌 등 국내 유수 야외 음악 축제 기획자인 김은성 비이피씨탄젠트 대표는 “청와대를 외국인 K팝 소비의 랜드마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다만, 내부 시설 확충과 주변 소음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는 이미 히트 상품이다. 한 대학교수는 “인문과 예술, 철학으로 콘텐츠를 채우고 4차 산업까지 망라해야 한다”며 “역사와 문화, 미래가 연동되는 공간으로 활용하려면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