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인기 보이 그룹 ‘NCT’ 멤버 재현이 선보인 ‘공항 패션’ 사진이 수많은 국내외 온라인 매체를 뜨겁게 달궜다. 굵은 짜임이 돋보이는 검은색 버킷햇(양동이를 뒤집어쓴 모양·일명 벙거지 모자)에 가슴팍을 노출한 카디건 차림.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 프라다의 초청으로 21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막을 내린 2023년 봄·여름 시즌 남성복 컬렉션에 참석하는 모습이었다.

①패션 편집몰 비이커(BEAKER)의 남성용 플라워 패턴 버킷 햇. 얇은 리넨(마) 소재에 시원한 프린트가 야외 활동에 포인트가 된다. ②닥스 골프 블랙 DD로고 스트랩 경량 페도라. 밀짚모자 스타일로 촘촘한 짜임이 있고 가벼운 게 특징이다. ③선덜랜드 남성 이중 메시 벙거지 모자. 통풍이 잘되는 메시(그물형)에 챙이 넓어 자외선을 막는 데 좋다. ④미국의 대표적인 모자 브랜드 스텟슨(stetson)에서 선보인 베레모 스타일의 뉴스보이캡(모자). 국내 편집숍 란스미어에서 만날 수 있다. /삼성물산패션부문·LF

올 들어 봄·여름 남성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바로 모자다. 루이비통·디올·돌체앤가바나·질샌더 등 해외 유명 브랜드 남성 패션쇼를 장식하며 핵심 액세서리로 떠올랐다. 밀짚모자로 불리는 라피아(라피아야자의 잎에서 얻는 섬유) 모자부터 카우보이 모자, 페도라(중절모의 일종), 일명 ‘뉴스보이(신문배달소년) 모자’라는 베레모 스타일은 물론, 버킷햇(양동이를 뒤집어쓴 모양·일명 벙거지 모자)까지 마치 올해의 ‘버킷 리스트’처럼 런웨이를 수놓았다. 특히 올해 유럽은 물론 국내도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폭염 때문에 여름 더위를 막아줄 모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남성 연예인 중에서도 옷 잘 입기로 소문난 지드래곤이나 유아인처럼 모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젊은 층은 많다. 하지만, 중년 남성에게 모자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아이템. 국내 버킷햇 인기의 ‘원조’가 올해로 데뷔 30년을 맞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라 해도, 아직 모자를 일상으로 가져오기에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실내에서 모자를 쓰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범절’도 고려할 요소다.

멋스러운 모자 패션을 선보여온 공간 디자이너 최임식(57) 크리에이티브 마인 대표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일단 한번 시도하면 자신만의 패션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 한번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시선이 쏠리는 것도 감수해야 할 점이죠. 너무 꾸민 것 같다거나, 혹은 벗었을 때 머리 모양이 헝클어질까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죠.”

페도라의 경우 크라운(모자 윗부분)에 두르는 리본이나 띠로 포인트를 줄 수 있다. “넥타이 대신 모자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도전의 문턱을 조금 낮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넥타이 색처럼 모자 색상이나 모자에 두르는 띠 색상으로 포인트를 줄 수도 있죠. 머리 모양 내기 힘들 때 오히려 모자 하나 눌러 쓰면 훨씬 편하기도 하고요.” 마치 스티브 잡스의 목폴라-청바지 패션처럼 자신의 ‘상징템’으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년 남성에게 모자라는 존재는 국내에서만 ‘애증’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도 패션 칼럼을 통해 모자를 소화하기 어려운 중년 남성들의 고민을 토로했다. 너무 힙스터(멋을 좇는 사람)로 보이는 건 아닐까, 혹은 괜히 젠체하거나 심하게 격식을 차린 듯 보이는 건 아닐까, 아니면 혼자만 해변에 놀러온 것처럼 소외당할까 그런 걱정들을 늘어놓았다. 말하자면 ‘카우보이 모자는 인디애나 존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라는 인식. 한국과 달리 남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데, 트렌디한 모자 패션 앞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전 세계를 관통하는 ‘중년 남자’들만의 공통의 언어라도 있는 듯 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와중에 골프 패션이 전 세계적인 유행을 타고 있는 것. 골프에서 영감 받은 패션을 일상에서 시도할 수 있게 된 것. 골프장에서 누구보다 다양하게 모자를 쓰던 그들 아닌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골프장에서도 자주 쓰는 버킷햇 같은 경우는 모자를 쓰다 돌돌 말아 뒷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남성 패션 전문가 한태민 샌프란시스코마켓 대표는 “다양한 모자를 시도해봐도 어색하면, 차라리 골프장에서 쓰는 야구모자 스타일 캡 모자를 쓰는 게 더 멋져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