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배우 남명렬과 특별상을 받은 원로배우 신구가 참석자들과 함께했다. 왼쪽부터 배우 예수정, 심재민 심사위원장,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수상자 남명렬·신구, 배우 손숙, 연출가 한태숙·손진책, 배우 서이숙. /남강호 기자

“잔망을 좀 떨겠습니다. ‘엄마! 나, 이해랑연극상 먹었어!’ 직장 잘 다니던 아들이 연극을 하겠다고 모든 걸 내팽개치니 걱정이 태산이셨겠지요. 공연 중이라 임종도 제대로 못 지켰습니다. 시상식이 끝나면 이 자랑스러운 상패를 들고 어머니를 찾아뵙겠습니다.”

13일 오후 5시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 로비. 제32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배우 남명렬(63)은 장대비를 뚫고 모인 하객 300명 앞에서 “엄마!”부터 외쳤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내 삶은 배우로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끝없는 싸움이었다”며 “30년 전 연출가 임영웅 선생님이 ‘얘가, 배우가 되겠냐?’ 하신 말씀이 나를 지배했고 감사하게도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이제야 조심스럽게 ‘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해랑연극재단(이사장 이방주)과 조선일보사가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연출가 이해랑(1916~1989) 선생이 추구한 리얼리즘 연극 정신을 이어가는 국내 최고 연극상이다. 수상자에게 트로피와 상금 7000만원을 수여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프로그램에 실린 인사말에서 “30년 동안 연극무대를 지킨 남명렬씨의 성취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청춘을 연극에 바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극과 격려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남명렬은 6년 다닌 제약회사에 사표를 내고 대전에서 연극을 하다 1993년 서울로 진출했다. 연극 ‘바다와 양산’ ‘코펜하겐’ ‘그을린 사랑’ 등 140여 편에서 진지하고 매끄럽게 인물을 구축했다. 심재민 심사위원장은 “남명렬은 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하는 배우”라며 “그가 빚어낸 인물들은 언제나 생생한 리얼리즘의 힘을 드러낸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동료 배우 박지일은 축사에서 “(남)명렬이는 제안이 들어온 작품은 배역이 아무리 작아도 스케줄이 되면 한다”며 “그렇게 겸손한 원칙을 지켜온 친구가 이해랑연극상을 받게 돼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고 했다.

원로 배우 신구(86)는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받았다. 1962년 데뷔한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파우스트’ 등 연극 200여 편으로 관객을 만났고 여전히 현역이다. 신구는 “몸이 따라오는 한 젊은 친구들과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다”는 수상 소감으로 박수를 받았다. 경기고 동기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축사에서 “입학하자마자 6·25 사변으로 뿔뿔이 흩어질 정도로 비참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신구는 연기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줬다”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구나. 친구로서 존경한다”고 했다.

배우 손숙이 사회를 본 이날 시상식에는 김윤철씨 등 이해랑연극상 운영위원, 길해연·전정옥씨 등 심사위원, 손진책·박정자·김삼일·한태숙·예수정·서이숙·이태섭 등 역대 수상자, 이해랑 선생의 가족인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과 이석주·이은숙씨, 이한승 극단 실험극장 대표, 차혜영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 등이 참석했다.

시상식 직후에는 연출가 이해랑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연극 ‘햄릿’(연출 손진책)이 개막해 의미를 더했다. 권성덕,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길해연 등 이해랑연극상 역대 수상자 10명이 출연한다. 이들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약 500년. 연출가 손진책, 무대미술가 박동우, 제작자 박명성까지 이해랑연극상 수상자 총 13명이 합작한 연극이다. 인생을 꾹꾹 눌러 담은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극 '햄릿' /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