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 /Art Streiber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이 싫기 때문이다. 나는 54세 착한 ‘아줌마’지만 혼돈과 불공평으로 얼룩진 세상을 못 참겠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인 글로 불의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만약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지금 당장 글의 감옥에서 탈출해 케이크를 굽겠다.”

2022 만해문예대상 수상자인 ‘파친코’ 작가 이민진(54)이 말했다. 지난 13일 전화 인터뷰에서였다. 그는 뉴욕 할렘에 있는 집을 떠나 미국 필라델피아의 호텔 방에 있었다. “다음 책 ‘American Hagwon(아메리칸 학원)’을 쓰려고 자발적 격리 중”이라고 했다. “갓 취직한 스물네 살 아들까지 집세 아낀다면서 집에 얹혀산다. 도저히 글에 집중할 수 없어 도망쳤다(웃음).” 문장을 끝까지 붙들고 고치고 또 고치는 스타일.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 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 거북이다. 늘 느리고 먼 길로 미련하게 돌아간다.”

‘거북이의 힘’으로 역작을 써냈다. 대학 시절(예일대 역사학과) 재일 교포 이야기를 구상한 뒤 2017년 ‘파친코’를 출간하기까지 30년 걸렸다. 인터뷰한 한국인만 수천 명.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샅샅이 훑어 4대에 걸친 재일 교포 수난사를 완성했다. “소설가는 허구를 다루지만 진실한 이야기임을 설득하는 사람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신뢰가 깨진다. 집요한 조사는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다.”

‘파친코’는 출간 즉시 2017 전미도서상 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는 찬사까지 등장했다. 동명의 애플tv+ 드라마가 세계적 성공을 거두면서 소설은 더 주목받았다. “이민 1.5세대 작가가 토종 한국 작가들도 엄두 내기 어려운 광대한 스케일의 이야기 성(城)을 축조해, 세계사의 변방에 묻혀 있던 한국 근현대사를 알렸다”는 점이 그가 만해상 수상자로 선정된 주된 이유다. “이 책은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증거다. 책을 쓰기로 맘먹은 열아홉 살 때 누군가 ‘이건 미친 짓’이라고 말해줬다면 안 했을 거다(웃음).”

수상 소식을 통보받자마자 “만해의 언어로 그의 정신과 맞닿고 싶어서” 온라인 서점에서 영문판 만해 시집을 샀다. “만해가 ‘언어’와 ‘명상’ 두 가지 도구로 상실로 인한 강력한 갈망(yearning)을 표출했음을 알았다. 우리 아버지는 1934년 원산에서, 어머니는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나라를 잃은 경험을 가진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여덟 살에 이민 가 모국어를 잃었다. 이별에서 오는 갈망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민진은 “예술은 우리 가슴속 피 흘리는 상처의 틈을 메워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8월에 열릴 시상식에 거동이 힘든 부모님을 모시고 올 계획이라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마지막 한국 여행일 것 같다. 속초로 가서 실향민인 아버지께 동해를 보여드리고 싶다.”

이민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 /애플TV+

미국 독자들에겐 생소한 재일 교포를 소재로 삼은 이유가 뭘까. “관심 밖 주제이지만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영어 자료를 찾아보니 아무도 안 다뤘더라. 책이 나와도 아무도 안 읽을 거라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순수 의지에 따라 한 일이다.” 책을 마침내 끝냈을 때 탈진했다. “한국과 관련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였다.” 탈고했지만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다. 600페이지짜리 원고를 출력해 상자에 넣은 채 지하철을 타고 한 출판 에이전시에 찾아갔다. 이후 겨우 한 출판사와 계약했다.

신작 ‘아메리칸 학원’을 완성하면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7년), ‘파친코’에 이어 그가 계획했던 ‘코리안 3부작’이 완성된다. 학원을 다룬 후속작에선 “한국인들에게 자식 교육을 넘어 삶에 지식을 적용하는 기술인 ‘지혜’를 기르는 데에도 관심 있는가 질문 던져보려 한다”고 귀띔했다. ‘지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때 미국 사절단으로 참석한 그가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이민진은 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무한한 지혜와 사랑을 주는 현명한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설가 경력 26년에 딱 두 권 썼다. 목표는 최대 5권이다. “네 번째 책은 내가 정체성을 찾은 과정을 다룬 자서전 ‘Name Recognition(이름 인식)’, 다섯 번째 책은 한국의 파독 간호사 이야기를 다룬 소설 ‘Marshall Plan(마셜 플랜)’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 내게 묻는다. 왜 한국만 쓰냐고. 그럴 때마다 반문한다. 그러면 한국 말고 뭘 쓰느냐고.” 이민진은 “내 목표는 모든 독자를 한국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농담 같지만 진담이다.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소설 속 러시아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듯, 세계의 독자들이 내 소설 속 한국인들의 마음이 되길 원한다. 고학력 백인 엘리트가 100년 전 문맹인 조선 여인(선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식 말이다.”

한국과 함께 이민진이 관심 가진 또 다른 화두는 ‘미래 세대’다. “지난 역사를 말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사람이 있지만 식민지 역사처럼 불편한 진실을 알아야만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배운다. 젊은 세대에게 역사는 시험 때문에 암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푸는 열쇠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내가 소설로 역사를 다루는 이유다.”

이민진 /Elena Seibert

◇아래 일문일답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상을 받았다. 만해를 아는가.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만해 한용운 시집 영문 번역판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했다. 나는 책에 종속된 사람이다. 모든 지식을 책에서 배웠다. 책을 통해 모르는 것을 알게 될 가능성을 사랑한다. 만해의 언어로 그의 정신에 닿고 싶었다.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읽었다. 만해가 문학을 통해 상실로 인한 강렬한 ‘갈망(yearning)’을 표출했음을 알게 됐다. 나라 잃은 슬픔을 연인과 이별한 아픔에 비유한 것이었다. 만해는 ‘언어’와 ‘명상’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두 가지는 오늘날 우리가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침묵 속의 현명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만해 같은 인물이 더 알려져야 한다.”

-어떤 의미인가.

“K팝 팬이긴 하지만 소프트파워 측면의 K 팝뿐만 아니라 만해 같은 한국의 역사적 영웅들이 해외에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한국은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피가 흐르는 나라다. 우리 어머니는 대학 시절 데모를 했고, 외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항거해 시위했다. 멋지지 않은가. 나는 이런 역동적인 한국을 알리고 싶다.”

-만해와 당신 모두 문학을 도구로 역사를 대면했다.

“만해는 저항운동으로 감옥까지 간 분이다. 나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분이다. 다만 만해 사상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자결(self determination)’과 ‘해방(liberation)’이라고 본다. 두 가지는 내가 글을 쓸 때 염두에 두는 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자꾸만 상자 안에 우리를 가두려는 세상에서 해방돼 진정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 글의 주제다.”

-개인적 경험 때문에 만해의 갈망에 더 깊이 공감한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1934년 원산에서, 어머니는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나는 어린 시절 나라를 잃고 조국 분단을 목격한 두 분에게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덟 살에 이민 가면서 모국어를 잃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만해가 보여준 이별에서 오는 갈망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해는 무엇인가를 상실했을 때, 감정의 틈을 매립하려는 열망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예술이 우리 가슴 속 피 흘리는 상처의 틈을 메워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8월 초 시상식 때 부모님도 오실 계획이라고.

“부모님이 거동이 불편하시다. 혹시 몰라 환불 가능한 티켓을 샀다. 어쩌면 마지막 한국 여행이 될지 모르겠다. 속초에 가서 아버지께 동해를 보여 드리고 싶다. 원산 앞바다는 갈 수 없지만 아버지에겐 북쪽과 연결된 바다를 본다는 자체가 의미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화장품 회사에 다니셨고,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신문 가판대부터 시작해 코리아타운에서 보석 도매상을 운영했다.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라고 하셨다. 자유를 주셨다.”

-왜 글을 쓰는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이 싫기 때문이다. 세상의 잔혹성이 싫다. 나는 모든 것에 예민하게 감성의 촉수가 뻗어 있다. 불공평하거나 불공정한 걸 보면 부당하다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10대의 반항심을 품고 산다. 그래서 늘 어른의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54세 착한 ‘아줌마’지만 혼돈과 불공평으로 얼룩진 세상을 못 참겠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인 글로 불의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만약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지금 당장 글쓰기를 멈추겠다. 글의 감옥에서 탈출해 케이크를 굽겠다(웃음).”

-로스쿨(조지타운대)을 마치고 변호사를 하다가 1996년 간 질환 때문에 일을 관두고 작가로 전향했다. 그 뒤 첫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쓰는 데 11년이 걸렸다. 파친코를 쓰는 데는 30년 걸렸다.

“나는 문장을 끝까지 붙들고 고치고 또 고치는 스타일이다. 데드라인 맞춰 마감하는 것은 질색이다. 지금 쓰고 있는 ‘아메리칸 학원’도 언제 완성될지 모른다. 자매 셋에 둘째인데 언니와 동생은 빠르다. 아버지가 그들은 토끼라고 부르셨는데 나는 매사 느려 거북이라고 부르셨다. 늘 느리고 먼 길로 미련하게 돌아간다.”

-어린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괴짜였다. 너드(덕후 기질 농후한 범생이)였달까. 말수도 적고 친구도 없었다. 유일한 친구는 책. 특히 고전을 좋아해서 대체로 내 ‘절친’은 죽은 유명 작가들이었다(웃음). 그들의 세계관이 나와 비슷해 많이 위로받았다. 위대한 소설엔 강력한 도덕성과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연민이 있다. 그걸 읽으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험하고 불평등하고 불확실한 현실과는 달랐다. 자꾸만 문학 속으로 도망쳤다.”

-방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저널리즘식 글쓰기로 유명하다.

“‘코리안 3부작’을 준비하면서 전 세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한국 사람 수천 명을 인터뷰했다. 학원 관련 신간을 위해 호주,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 한국인이 운영하거나 관련된 학원 100여 곳을 취재했다. 소설가는 사람들이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쓰지만 진실한 이야기임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잘못된 정보나 거짓 느낌이 들면 독자와의 신뢰가 깨진다. 독자들이 나를 믿게 하려면 집요한 조사를 해야 한다. 그것은 내게 ‘숙제’ 같은 것이다.”

-차기작은 왜 학원을 소재로 삼았나.

“한국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는 관심사가 뭘까 고민했다. ‘교육’이었다. 지위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서 왜 이런 학원 시스템이 존재하는가를 살펴보고 싶다. 부정적인 측면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교육 때문에 한국에서 호주로 갔다가 다시 LA로 가는 가족 등이 등장할 것이다. IMF 외환 위기도 담으려고 한다. 당시 한국인들은 위기 극복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똘똘 뭉쳤다. 대단했다. 그런 것을 해외에선 거의 모른다.”

-3부작이 끝나도 한국에 대해 쓸 건가.

“소설가로서 목표는 죽을 때까지 총 5권을 쓰는 것이다. 물론 한국 관련이다. 작가 인생 26년 동안 딱 두 권 썼으니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네 번째 책은 내가 정체성을 찾은 과정을 다룬 자서전 ‘Name Recognition(이름 인식)’, 다섯 번째 책은 한국의 파독 간호사 이야기를 다룬 소설 ‘Marshall Plan(마셜 플랜)’이 될 것이다.”

-왜 계속 한국을 다루는가.

“모든 기자들이 내게 묻는다. 왜 한국만 쓰냐고. 그럴 때마다 반문한다. 그러면 한국 말고 뭘 쓰느냐고.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 사람을 수없이 만나면서 그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관심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안의 활동가, 개혁가로서의 면모가 발현했는지 그들이 주목받게 하고 싶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글, 이야기, 지면이었다. 누군가 30년 걸린다고 했으면 안 했을 거다(웃음). ‘파친코’를 다 끝냈을 때 기진맥진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에 대해 정말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였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아이 같다고. 아이들은 약속 어기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웃음).”

-왜 재일교포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나.

“관심 밖 주제이지만 감정적으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재일교포도 그 중 하나였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한 일이 아니다. 영어 자료를 찾아보니 아무도 안 다뤘더라. 책이 나와도 아무도 안 읽을 거라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순수 의지에 따라 한 일이었다. 다 쓰고 나서 계약할 출판사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낙담하긴 했다.”

-낯선 소재인데 국적을 초월해 공감대를 끌어낸 이유가 무엇일까.

“‘내 목표는 모든 독자를 한국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농담 같지만 진담이다.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소설에 등장하는 러시아 인물에 감정이입하듯, 세계의 독자들이 내 소설 속 한국인들의 마음이 되길 원한다. 고학력 백인 엘리트가 100년 전 문맹인 조선 여인(선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식 말이다. 나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미국 언어인 영어로 미국적인 글쓰기로 다뤘다. 나처럼 미국과 한국이 조합된 글이다. 한 북 토크에 갔더니 청중 1200명 중 50명만 아시아인이었다. 대부분이 백인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민진은 한류에서 특별한 지렛대로 평가받는다. 봉준호, BTS, 오징어 게임이 한국발(發) 한류의 주역이라면, 이민진은 해외발(發) 한류를 이끌었다는 평이다. 한국발 한류가 한국어에 기반한다면 이민 1.5세대인 이민진의 미국발 한류는 영어로 쓴 심도 있는 한국 관련 콘텐츠라는 점에서 보다 포괄적이며 확장성을 띤다. 그의 작품이 지극히 한국적인 내용임에도 글로벌 관객이 먼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파친코’ 스토리가 초고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초고를 쓰고 2007년 남편(일본계 미국인 금융인)을 따라 일본에서 4년 살았다. 초고엔 솔로몬과 모자수만 있었다. 선자, 한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오사카, 교토 등을 돌며 재일교포 1세대 여성들을 엄청 많이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며 내가 쓴 초고는 엉터리란 걸 알았다.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썼다.”

-드라마화되면서 다시 소설이 조명받았다.

“드라마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겠다.”

이민진 소설 '파친코' 개정판

-판권 연장 무산으로 절판됐다가 27일부터 개정판이 출간된다. 번역이 바뀌었다.

“이전과 이번 번역 모두 존중한다. 번역은 또 하나의 예술 형식이며, 번역가는 문학계의 천사(the angels of the literary world)다. 충분한 보수도, 충분한 인정도 받지 못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세계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존경한다. 사실 번역보다 구조가 더 중요하다. 소설을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내 책은 원래 1부 고향, 2부 조국, 3부 파친코로 나뉘어 있는데 국내 초판에선 2부로 구성됐다. 개정판엔 원서처럼 세 부로 구성됐다.”

-하버드 강연 등을 보니 당신은 훌륭한 연사더라. 비결이 뭔가.

“가족들이 들으면 웃겠다. 나는 말하는 걸 싫어한다. 다만 강연할 때 청중에게 쓸모 없어선 안 된다, 도움되는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100% 지우고 청중 입장이 돼 나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러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

-’한국’과 함께 당신이 화두로 삼는 것이 ‘미래 세대’다.

“목사인 외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원폭으로 부모를 잃고 한국에 돌아온 아이들을 돌보는 고아원을 부산에서 운영하셨다. 그 영향인지 어린이들을 돌보는 데 관심이 많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글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다음 세대를 위해 정서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사려 깊게 행동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더 격려하고 덜 비판적이려고 한다. 젊은 세대는 겁에 질리면 자라나지 못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 한국의 어린 세대들은 입시 때문에 특정 주제를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어른들 잘못이다. 지난 역사를 말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사람이 있지만 식민지 역사처럼 불편한 진실을 알아야만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배운다. 과거에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보면서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역사는 시험 점수 때문에 암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푸는 열쇠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내가 소설로 역사를 다루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