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악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16년 1월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한 뒤 방송가와 영화계 안팎에선 기대보단 우려가 먼저 터져 나왔다. 넷플릭스 측의 막대한 자금력에 제작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온라인을 중시하는 사업 전략에 국내에선 대형 멀티플렉스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난 2017년 넷플릭스가 600억원을 투자해 만든 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경우 당시 국내에선 온라인과 지역 극장 일부에서 겨우 개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악연은 인연이 됐다. 글로벌 플랫폼은 해외로 통하는 고속도로가 됐고, 우리 콘텐츠도 해외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 판가름하는 잣대가 됐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사로잡은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발판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았고, 10년간 빛 보지 못했던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며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코로나는 2차선 고속도로를 8차선 아우토반으로 바꾸어놓았다.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에 목 말라 있던 해외 시청자들이 한국 콘텐츠를 쉽게 접하는 교두보가 된 것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넷플릭스에서 한국 콘텐츠를 시청한 전 세계 회원들의 시청 시간은 2019년 대비 6배 이상 증가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까지 한국 시장에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지난해에만 5550억원 규모.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을 비롯해 ‘지옥’ ‘마이 네임’ ‘고요의 바다’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역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5편이었던 오리지널 제작을 올해는 25편으로 늘렸다. 하나증권은 올해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액이 8000억원에서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NBC방송은 최근 “한국 콘텐츠는 재미에 더해 도덕성과 인간성에 대한 주제 탐구를 심었다. 예술 영화와 장르 영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또 다른 장르를 탄생시키고 있다”면서 “미국인의 시청 습관을 바꾼 한국 드라마 모델과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공룡이 손잡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사업자적 측면에서 광고·구독료 등과 관련된 비판은 물론 있을 수 있지만,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 한국 콘텐츠의 우수한 역량과 잠재력을 확인시킨 덕에 앞으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업자 간의 힘싸움에서 한국 콘텐츠가 유리한 위치를 얻어내는 성과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