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발레 ‘오네긴’에서 오네긴(이현준)이 타티야나(강미선)의 구애 편지를 찢는 장면. 엇갈린 운명과 잔인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유니버설발레단

한 극장에서는 연애편지를 계속 읽어주는데 다른 한 극장에서는 연애편지를 사정없이 찢는다. 이번 주말부터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사랑의 두 풍경이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이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네긴’을 올린다. 남녀 주인공의 거듭 엇갈리는 사랑을 그린 드라마 발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러브레터’는 남녀 주인공이 평생 주고받은 편지를 낭독하는 연극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연애편지를 핵심 재료로 쓴다는 게 공통점. 그런데 ‘오네긴’은 슬프고 ‘러브레터’는 웃긴다.

드라마 발레 '오네긴'은 첫사랑에 빠진 소녀부터 성숙한 여인까지 여주인공에게 섬세한 연기력을 요구한다. 강미선, 손유희, 홍향기, 한상이가 타티야나로 번갈아 춤춘다. /유니버설발레단

◇드라마 발레 ‘오네긴’

푸시킨의 소설이 원작이다. 존 크랑코가 안무했고 차이콥스키의 피아노곡 등을 편곡해 발레로 재탄생했다. 196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초연했고 강수진의 은퇴작으로도 유명하다. 짝사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둥글게 망설이는 몸짓,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 흔들리는 심리, 뿌리칠 때의 단호함이 돋보인다.

시골 처녀 타티야나는 매력적이지만 오만한 귀족 청년 오네긴을 보는 순간 사랑의 감정에 휩쓸린다. 1막 중 타티야나의 침실, 거울을 뚫고 오네긴이 나타난다. 그에게 편지를 쓰다 잠든 타티야나가 깨어나 오네긴과 추는 꿈속의 춤은 뜨겁다. 그러나 현실에서 오네긴은 그녀의 편지를 찢으며 구애를 거절한다. 괴로움을 표현하는 타티야나의 춤은 조각난 편지처럼 헝클어져 있다.

'오네긴' 3막에서 회한의 파드되 /유니버설발레단

3막에서 15년 만에 재회한 오네긴과 타티야나는 180도 입장이 달라져 있다. 바라보고 돌아서기를 되풀이하는 오네긴의 춤에는 후회가 짙게 배어 있고, 이번엔 타티야나가 그의 구애를 고통스럽게 뿌리친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오네긴의 편지를 찢는다. 어긋난 사랑의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는 대목은 처연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공연 전에 무대에 올라 해설을 할 UBC 문훈숙 단장은 “관객은 타티야나와 오네긴이 편지와 춤으로 풀어놓는 쓰라린 감정을 느끼며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연극 ‘러브레터’에서 앤디(오영수)와 멜리사(박정자)가 연애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파크컴퍼니

◇연극 ‘러브레터’

여덟 살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앤디와 멜리사가 주고받은 편지로만 구성된 독특한 연극이다. 두 배우가 서로 쳐다보지 않고 연애편지를 낭독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울림을 선사한다. 미국 극작가 A.R. 거니의 대표작으로 톰 행크스, 멜 깁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시고니 위버 등이 출연할 만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연극 '러브레터' 작가의 말

47년 그리고 333통. 이 연극이 날마다 풀어내는 세월과 연애편지의 숫자다. 앤디가 멜리사의 어머니에게 멜리사의 생일 파티에 초대해 준 데 대해 감사 편지를 쓰면서 두 사람의 편지 여행이 시작된다. 편지를 좋아하는 앤디와 그것을 끔찍해하는 멜리사는 늘 티격태격하지만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편지는 점점 사라져가는 예술이지만 ‘나’를 보여줄 최상의 방법이다.

1929년 미국 경제공황 때 태어난 앤디와 멜리사가 읽어주는 편지를 듣고 있으면 만나고 헤어지고 각자 가정을 꾸리고 이혼하고 또 재회하는 두 사람의 평생이 객석으로 돌진해온다. 오경택이 연출했는데 반찬 없이 즐길 수 있는 찰밥 같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내 손으로, 내 글씨로 내 마음 전부를 보내는 게 편지”라며 “움직임이 없지만 정확한 발음과 섬세한 감정 표현을 요구한다”고 했다. 오영수·박정자, 장현성·배종옥이 11월 13일까지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연극 '러브레터' /파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