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히트곡은 금이나 석유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지난 24일(현지 시각) 영국 음악저작권 투자 펀드 힙노시스 송스가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저스틴 비버(29)의 곡 2억달러(약 2467억원)어치를 사들이며 남긴 말. 비버는 특히 ‘베이비’ ‘소리’ 등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독식했던 대형 히트곡을 비롯해 2021년 12월 31일 이전 발매된 290곡 이상의 음원 저작권, 마스터 레코딩(녹음 원본), 백 카탈로그(Back catalogue·과거 발매곡 목록) 인접권 등을 통째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년 사이 비버처럼 히트곡 저작권을 대거 매각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82)은 특히 두 차례나 대거 저작권을 팔았다. 2020년 유니버설 뮤직에 과거 발매한 600여 곡의 멜로디와 가사 판권을, 2022년에는 소니 뮤직에 과거 60년간 낸 모든 음원과 앞으로 낼 신곡 음원의 녹음(레코딩) 저작권을 넘겼다. 각각 3억달러(3593억원)·2억달러(2400억원)를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에는 가수 스팅(72)이 대표곡 ‘잉글리시 맨 인 뉴욕’ 등을 포함해 지난 38년간 낸 솔로 앨범 15장과 밴드 폴리스 시절 만든 곡 판권을 유니버설뮤직에 팔았고, 최대 3억달러(3600억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에는 ‘록의 대부’ 브루스 스프링스틴(74)이 소니 뮤직에 히트곡 다수의 판권을 넘겼고, 5억5000만달러(6545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 저작권 판매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가수 임창정은 자신이 만든 걸그룹 미미로즈 제작비 200억원 마련을 위해 ‘소주 한잔’ 등 160여개 히트곡 저작권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저작권료 지분을 사고파는 음원투자 플랫폼 뮤직카우도 아이유, 김현식, 악동뮤지션 등의 저작권 일부를 계속 사들이고 있다.
대중음악계에선 특히 비버의 사례가 “과거와 달리 팝스타들의 저작권 매각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평가한다. 그의 나이 때문이다. 그간 해외 음악 시장에선 활동 기간이 오래된 과거의 대스타들만이 저작권 통째 매각에 우호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법상 대형 음반사 등 법인을 통해 낸 곡들의 저작권 연한이 최대 95년이기 때문. 앞서 밥 딜런의 판권 매각도 ‘블로잉 인 더 윈드(1962년)’ 등 초기 대표곡이 당장 2057년부터 저작권 기한이 끝나고, 고령인 그의 나이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직접 작곡에도 참여하는 가수들은 유독 저작권 판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2020년 미국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는 과거 낸 6개 앨범 전집을 재녹음했다. 당시 해당 앨범의 저작권(마스터권)들을 사들였던 미국 유명 연예 제작자 스쿠터 브라운이 이를 테일러의 허락 없이 해외 펀드에 3319억원을 받고 판 것에 대한 대처였다.
판권 판매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이유로는 가장 먼저 ‘팬데믹 시대’가 꼽힌다. 방역 기준 강화로 각종 공연이 무산되면서 안정적인 수입에 대한 가수들의 고민이 커졌다는 것. 실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 ‘로큰롤 여왕’ 티나 터너를 비롯해 데이비드 보위, 폴 사이먼, 샤키라, 레드핫칠리페퍼스 등 이름 쟁쟁한 스타들이 줄줄이 노래 판권을 통째 넘겼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음원 수익은 오프라인 공연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태풍 등으로 당장 생산성이 떨어진 논밭을 농부가 미래 가치를 정산받아 목돈에 파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세금 문제’도 스타들의 저작권 매각 행렬 원인으로 꼽힌다. 2020년 밥 딜런의 저작권 매각 당시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세금 정책 강화의 영향”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2021년부터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자본이득세(주식, 채권, 부동산 등 매각 양도차익 과세)를 기존 20%에서 최고 39.6%까지 인상하는 세금 강화 정책을 예고한 결과란 것이다. 이후 미국에선 해당 입법 적용이 지연됐지만, 높은 연간 저작권 수익을 얻는 스타들일수록 향후 장기간 고소득자 세율 구간에 걸리기 쉬울 거란 불안감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을 사들이는 입장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였던 팬데믹 기간이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업계에선 저작권 매수 금액을 통상 최근 5년간 저작권료 수입 연간 평균의 5~10배로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음악전문잡지 롤링스톤스는 “(목돈 마련이 용이한 팬데믹 기간) KKR 등 월스트리트의 거대 투자 펀드들이 저작권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고 평가했다.
최근 거세진 ‘레트로(복고풍) 유행’은 투자 회사들의 저작권 구매 관심을 더욱 끌어당기고 있다. 정보업체 MRC 데이터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미국 내 스트리밍 서비스 소비자들이 선택한 음악의 70%는 발표 후 18개월 이상이 지난 음악이었다. 투자 회사들이 사들인 저작권 대부분도 과거 인기곡을 모아둔 기획 음반 발매, 저작권 가치를 주식이나 펀드처럼 사고파는 투자 플랫폼 운영 등에 쓰이고 있다. 한 대형 음반사 관계자는 “묵혀뒀던 과거 곡의 인기가 다시 폭발하는 과정에서 저작권 수익이 급증하는 경우가 빈번해져 투자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