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개봉한 영화 ‘성스러운 거미(Holy Spider)’는 이란 사회를 다뤘지만 요르단에서 촬영했다. 2022년 프랑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이란에서는 상영 금지됐다. 이 영화를 만든 알리 아바시(42)는 테헤란 출신으로 ‘셜리’(2016)와 ‘경계선’(2018)으로 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이다. 덴마크에서 공부한 뒤 유럽에서 활동해왔다.
‘성스러운 거미’는 이란에서 성매매 여성 16명을 살해하고 종교적 이유로 범죄를 정당화한 실화를 담아냈다. 살인마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여론이 일고 정부와 경찰마저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 가운데, 여성 기자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이 사건을 파헤치며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 제목은 범인이 시신을 차도르로 감아 유기하면서 얻은 별명(거미 살인마)에서 가져왔다.
카타르 월드컵 때 이란 축구 선수들은 국가 제창을 거부했다. 정부에 대한 시위였다. 국제인권단체에 따르면 이란 당국이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시위 참가자 500여 명이 숨졌고 2만여명이 체포됐다. 이메일로 만난 알리 아바시 감독은 그런 노력이 이란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묻자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며 “이란 축구 대표팀이 국가를 제창하지 않아서 ‘작은 승리’를 만끽할 때마다 어느 모퉁이에선 사람들이 구타당하고 투옥되고 처형되는 비극이 일어났다”고 답했다.
–매우 정치적인 영화로 보인다.
“그렇다. 현재 ‘이란의’ 또는 ‘이란에 대한’ 모든 것은 다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정부에 반대하거나 체제에 대한 비판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순 없다. 그것보다는 누아르 필름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이란 사회에 대한 영화다. 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든다면 이란 정부가 지난 45년간 행한 검열의 벽을 부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잔인하고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영화 같다.
“어떤 주제를 다룰 땐 어느 정도 도덕적 의무가 있어야 한다. 여성을 향한 폭력과 혐오라는 주제는 중요한 이야기다. 관객이 그 고통을 느끼면서 여성의 처지가 되길 바란다. 이 영화를 팝콘 먹으면서 즐겼다면 잘못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의 클로즈업 화면이 인상적이다.
“중요한 장면을 연기할 때 나는 참견하지 않았다. 망명 중인 그녀가 그 캐릭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춘부처럼 화장하고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를 기다리는 장면의 연기에 무척 깊은 인상과 감동을 받았다. 그가 오기를 원하면서도 무서워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 막상 그가 도착하자 행복해하면서도 충격받고,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런 감정을 멋지게 묘사했다.”
–이란 정부는 이 영화를 방해했고 제작진을 위협했다. 최근에도 어떤 압력을 느끼나.
“영향력이 뻗치는 모든 단계에서 이 영화를 금지하려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이란에서 시위가 번졌다. 덕분에 이 영화와 관련된 일은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가 됐다. 정부의 관심 밖에 있게 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란은 여성 인권 해방 운동, 정부의 진압과 처형 등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히잡 시위’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란 혁명(Iranian revolution)’이라고 한다. 지난 50년간 이란에서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란 사회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다. 지금은 비극적으로 느껴지더라도 터널 끝엔 빛이 있으리라 믿는다.”
–꿈이 있다면.
“이란에서 진짜로, 제대로 상영하고 싶다. 이란과 같은 독재국가들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아주 안정적으로 보이다가 붕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에 테헤란에서 늦게나마 ‘성스러운 거미’ 레드카펫 행사가 열린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