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을 좋아한다. 아동 문학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작가다. 나도 ‘아동 시절부터 로알드 달을 읽었다’고 세련되게 말하고 싶다. 그런 문장이 있다. ‘유년기 아버지 권유로 듣기 시작한 클래식’이나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샤넬 백’ 같은 문장 말이다. ‘나는 부유하고 교양 있게 자랐다’는 자부심이 드러나는 문장이다. 어차피 여기서 그런 문장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내 아동 시절 로알드 달은, 아동은 거의 모르던 이름이었다.

내 세대 한국인은 영화로 로알드 달을 먼저 접했다. 요즘 뮤지컬과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다시 만들어진 ‘마틸다’(1996), 애니메이션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1996),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웨스 앤더슨의 ‘판타스틱 MR 폭스’(2009),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다. 로알드 달은 할리우드 거장들이 사랑한 작가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로알드 달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 팀 버튼이 그를 좋아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동화들은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영국식 블랙 유머와 풍자와 기괴한 캐릭터로 넘쳤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지만 희망의 상상력을 잃지 말라 말하는 그의 동화를 유년기에 읽지 못한 것이 화가 났다. 그의 반권위주의적 동화가 1980년대 한국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을 리는 없으니 출판업자들의 게으름을 비난할 수는 없다.

로알드 달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출판사가 지난 2월 로알드 달의 작품 속 표현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수정한 사실이 전해졌다. 펭귄 산하 아동문학 출판사 퍼핀은 새로 책을 출간하면서 외모, 인종, 성과 관련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을 바꿨다. 뚱뚱한(fat)은 거대한(enormous)으로 바꿨다. 쪼끄만(tiny)은 작은(small)으로 바꿨다. 검다(black)와 하얗다(White)는 다수 삭제됐다. 캐릭터 설정도 바꿨다. 남성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을 좋아하는 ‘마틸다’는 제인 오스틴 팬이 됐다.

소셜미디어는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했다. 살만 루슈디부터 영국 총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반발했다. 논란이 커지자 출판사는 고치지 않은 버전도 출간하겠다고 물러섰다. 다만 많은 아이는 이제부터 모든 표현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고친 로알드 달을 읽으며 자라게 될 것이다. 로알드 달은 현재적인 작가가 될 것이다. 대신 그의 동화가 가진 당대성은 사라질 것이다. 올바르든 아니든 문장 속에 깃든 역사의 흔적은 없어질 것이다. 정치적인 올바름을 위해 과거의 예술작품을 지우거나 수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인가?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유년기에 로알드 달 동화를 읽지 않은 것은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그랬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더 비뚤어진 글을 쓰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런 글은 신문에 팔아 입에 풀칠할 수도 없다. 이런 소리를 하면 아이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로알드 달 전집을 얼른 사주려던 독자들이 망설일까 조금 걱정이긴 하다. 아니다. 구매 버튼을 누르시라. 유년기에 로알드 달을 읽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