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사신도랑 똑같네!”
지난달 25일 일본 나라현 아스카 다카마쓰(高松) 고분 벽화관. 발견 당시 모습을 실물 크기로 모사해놓은 청룡·백호·현무 등 사신도와 채색 치마를 입은 여인들 그림을 보며 탐방객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한국에선 1971년 백제 무령왕릉이 발굴됐는데, 1년 뒤 일본에선 다카마쓰 고분이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며 “보시는 것처럼 고구려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7세기 후반 무덤”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주요 유적지를 방문해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모색하는 ‘제44회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이 지난달 23~27일 열렸다.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신한은행·GS칼텍스가 협찬한 이 행사는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초·중·고 교사를 초청해 1987년부터 매년 1~2회 개최하고 있다. 그동안 1만8000여 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전국에서 교사 170명이 참가했고, 한일관계사 전문가인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 고대사 이한상 교수, 불교사 엄기표 단국대 교수가 현장 해설을 맡았다.
교류와 갈등, 우호와 침략이 같은 길에서 일어났다. 4박 5일 탐방의 시작은 규슈 가라쓰(唐津)의 나고야 성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려고 급하게 축조한 조선 침략 기지였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1992년 박물관이 들어서서 한·일 교류를 주제로 한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낳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합니다.” 손승철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선사시대 만남부터 적대와 공존, 대결을 거쳐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간 관계”라며 “이 안에 박물관을 지은 이유가 유적과 유물을 통해 다시는 한일 간 불행한 전쟁을 하지 말자 다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규슈에서 나라, 교토, 오사카로 이동하며 일본 속에 스민 한민족의 숨결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규슈 후나야마(船山) 고분 기념관에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빼닮은 유물이 전시됐다. 교토 고류지(廣隆寺)에선 우리 국보 금동 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은 목조 반가사유상이 탐방단을 맞았다. 신라제(製) 불상이라는 학설이 유력한 이 반가상 앞에서 넋을 놓고 감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일본 최초의 사찰 아스카데라(飛鳥寺)는 백제와 관련이 깊은 절. 엄기표 교수는 “백제 기술자들이 일본에 파견돼 지은 사찰로 추정되며, ‘아스카 대불’이라 불리는 본존불은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설명했다.
조선통신사 숙소 아카마 신궁 바로 옆에 서 있는 청일전쟁강화기념관에서 탐방단은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지로, 일본은 전쟁 승리 후 본격적으로 한국 침략의 길에 들어섰다. 우호와 침략이 교차되는 현장을 걷고, 강연을 메모하며 교사들은 알찬 깨달음을 수확했다. 남창욱 울산 중산초등학교 교사는 “그동안 부끄러울 만큼 우리 역사와 일본에 대해 무관심했고, 편견이라는 알에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며 “이번 탐방이 새로운 세계의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오사카·교토·나라=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