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교수는 “괴테를 공부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작업 중인 ‘괴테 전집’까지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젊은 괴테의 집’ 2층 전시 공간은 6월 말부터 공개할 예정이다. /김지호 기자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독문학자 전영애(72)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일 장화 대신 캐주얼화를 신고 있었다. 장화는 스스로를 ‘노비’라고 칭하는 그가 가장 자주 신는 신발이다. 9년 전 이곳에 일반 시민들이 문학을 체험할 수 있는 ‘여백서원’을 지었고, 관리를 혼자 도맡아 왔다. 이번엔 그 뒤편에 자연과 어우러진 ‘괴테 마을’을 조성 중이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와 관련된 건물을 짓는다는 구상. 우선 ‘젊은 괴테의 집’을 최근 완공한 전 교수는 “괴테를 통해 꿈이란 허황된 게 아니며, 우리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 속 이 문장에서 ‘괴테 마을’이 시작됐다. 전 교수는 동양 여성 최초로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괴테 금메달’(2011)을 받은 괴테 권위자. ‘파우스트’를 비롯해 괴테의 책을 여럿 번역했지만, 특히 이 자서전을 번역한 다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철학자 등으로 다방면에서 성과를 낸 괴테의 삶에 주목하자고 말했다. “괴테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가의 샘플이 괴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보여주려는 거죠. 괴테는 읽어도 소화하기가 어렵기에 그 입구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전 교수는 “괴테는 지금 시대에 더욱 시사성이 있다”며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역작 ‘파우스트’를 예로 들었다. “악마가 ‘다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욕망’ 아닌가요.” 그러면서 ‘파우스트’ 속 주님이 악마에게 건넨 이 말을 강조했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전 교수는 “‘잠깐 방황해도 괜찮다’는 값싼 위로가 아니라, 정교한 위로다. 70살이 되어도, 더 늙어도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약 1만평 규모의 괴테 마을에는 여백이 많다. 마을 초입에는 최근 완공된 ‘젊은 괴테의 집’ 외에 괴테가 살다 숨을 거둔 ‘바이마르 괴테하우스’를 본뜬 집과 정원을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집을 조성할 계획이다. 각 장소에서 괴테의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젊은 괴테의 집’에는 ‘극복’을 주제로 한 도서관과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전 교수는 “많은 분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저를 보며 ‘바쁘시군요’라고 묻지만, 저는 ‘힘들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힘든 순간을 참고 더 빠르게 올라가야한다는 걸 괴테에게 배웠다”라고 했다.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숲길을 지나면, 풀과 꽃 내음이 가득한 언덕이 나타난다. ‘책 오두막’을 비롯해 자연 속 문학 체험 공간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전 교수는 “많은 실험을 통해 하나의 문장을 끌어내는 학문들과 달리, 문학은 한 문장을 온갖 사연으로 풀어 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괴테 마을에는 온갖 사연이 쌓이고 있다. 독일에서 만난 생면부지 외국인이 ‘괴테 마을’의 꿈을 이루라며 돈을 보태준 것을 시작으로, 작은 도움이 모여 마을 부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마을 관리, 건물 설계를 비롯한 전 교수의 노력이 더해졌다. 얼마 전엔 ‘저먼 아이리스’ 1000포기를 심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여백서원 짓고 나선 ‘5인분’ 노비였는데, 이제는 ‘7인분’ 노비로 승진했습니다. 숲속 괴테 마을에 가끔씩 와서, 각자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