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김성호(33)씨는 최근 폐막한 영국 BBC 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의 가곡 부문 우승자다. 하지만 우승 소식 못지않게 화제를 모은 건 그의 의상이었다. 회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그는 결선 무대에서 슈만·본 윌리엄스·라흐마니노프 등의 가곡들과 함께 ‘동심초’(김성태 곡)를 불렀다.
현재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인 그는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해외 방송이나 무대에서 한복을 입고 당당하게 노래하는 BTS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대회를 주최하는 BBC 카디프 콩쿠르는 홈페이지를 통해 두루마기(Durumagi)를 영문으로 표기한 뒤 “많은 관객들이 그의 회색 한복에 그려진 한국 전통 문양의 의미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김씨는 “현지 관객들께 거북, 학 등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문양에 대해서 설명 드렸다”면서 “실은 한복을 맞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한국에서 노래할 때 인터넷 쇼핑몰에서 급하게 주문한 것”이라며 웃었다.
서양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주로 부르는 해외 콩쿠르에서 익숙하지 않은 한국 복장은 자칫 불리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한국 클래식(K-Classic)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리는 기회가 되고, 관객들에게도 좋은 추억이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예선에서만 한복을 입을까 했는데 현지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결선까지 입었다”고 했다. 결선에서는 ‘동심초’를, 예선에서는 ‘고풍의상’(조지훈 시, 윤이상 곡)을 각각 불렀다. 그는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한국적 한(恨)과 흥을 담은 노래들이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가곡 부문에서는 의무 조항은 아니지만 참가자들이 자국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그는 청명하고 서정적 고음이 돋보이는 리릭(lyric) 테너에 가깝다. 대회 우승자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노래들을 다른 언어로 불러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되도록 목소리는 아끼면서도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악보와 가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 우승자는 그가 네 번째다. 가곡 부문에서 바리톤 노대산(1999년), 베이스 박종민(2015년)이 우승했고, 오페라 아리아 부문에서는 바리톤 김기훈(2021년)이 1위에 올랐다.
그는 고교 때 기독교 중창단에서 노래하며 본격적으로 성악을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2017년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2018년 벨베데레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20년부터 도르트문트 극장에서 전속 가수로 노래하고 있다. “성악가의 감정은 표정이 아니라 갈비뼈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는 “숨이 나고 들면서 소리가 나오는 몸속 깊숙한 갈비뼈에서 성악가의 진짜배기 감정도 우러나온다고 선생님들께 배웠고 지금도 믿고 있다”고 했다. 다음 달 베를린에서 열리는 한독(韓獨) 수교 140주년 기념 공연에서 노래하고 도르트문트 극장에서도 오페라 ‘라 보엠’ ‘마술 피리’의 주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대형 가수나 세계적 스타보다는 관객들의 곁에 다가가 편하게 위로할 수 있는 이웃 같은 성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