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냥개들’에서 악독한 사채업자와 맞서기 위해 훈련 중인 청년 복싱 선수 건우(우도환·오른쪽)와 우진(이상이). 김주환 감독은 “펀치 하나하나가 드럼처럼 관객의 심장을 울리도록 하기 위해 원작의 유도를 복싱으로 바꿨다”고 했다. /넷플릭스

“‘범죄도시3′ 개봉 후에 복싱장 관장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체육관에 다니고 싶다는 분들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배우 마동석은 최근 ‘범죄도시3′ 관객 900만 돌파를 기념해 열린 행사에서 “실감 나는 복싱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매주 선수들과 스파링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복싱의 인기가 꼭 ‘범죄도시3′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청년 복싱 선수들이 악독한 사채업자에게 맞서 한판 대결을 벌이는 드라마 ‘사냥개들’도 지난주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부문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했다. 21일 개봉한 영화 ‘귀공자’도 필리핀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의 혼혈) 복서가 약자를 차별하고 무시하는 이들에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 한동안 인기가 한 풀 꺾인 듯했던 복싱이 다시 한국 영화·드라마를 휩쓸고 있다.

영화 ‘귀공자’에서 복싱 선수 ‘마르코’(오른쪽)는 아픈 엄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한다. /NEW

무엇보다 맨주먹으로 자극적이고 강렬한 액션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복싱의 장점이다. 미국의 스포츠 채널 ESPN이 전문가 집단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복싱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스포츠’ 1위에 뽑혔다. 인내력·힘·빠르기 등 난도를 평가하는 10항목 중 두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화 ‘귀공자’의 복싱 컨설팅을 맡은 이훈용 서울시 복싱협회 이사는 “복싱은 이종격투기와 다르게 상체 위주로 싸우고, 80%는 얼굴만 때리는 스포츠”라고 했다. “복서 역할을 맡은 배우가 때리고 맞아본 경험이 없어서 자꾸 눈을 감더라고요. 복서는 눈을 감으면 안 되기 때문에 눈 뜨는 훈련부터 했죠.”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단순 명쾌한 스토리가 사랑을 받듯, 펀치 한 방만으로 보는 이들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 코로나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시헌의 실화를 그린 영화 ‘카운트’에서 복싱 지도를 맡은 김주영 용인대 교수는 “코로나 이후 어렵고 힘든 분이 많다 보니, 헝그리 정신과 시원한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는 복싱이 사랑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사냥개들’의 박영식 무술 감독도 “거친 세상에 맨몸으로 부딪히는 젊은 청년들의 두 주먹 액션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춤을 추는 듯한 경쾌한 움직임과 리드미컬한 타격감이 복싱의 매력”이라고 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시헌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카운트'.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돼 영화 톱(TOP) 10 차트에 올랐다. /필름케이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관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배우들도 선수 못지않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귀공자’ 오디션에서 1980:1 경쟁률을 뚫고 필리핀 복서 역할을 맡은 배우 강태주는 전국체전을 앞둔 고교 복싱 선수들과 한 달 반 동안 주 5일 훈련을 받았다. 영화에서 복싱 장면의 분량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박훈정 감독은 “실제 복서처럼 보이는 체형과 복서가 싸우는 듯한 액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훈용 이사는 “복서는 우락부락한 근육이 필요 없기 때문에, 어깨나 등 근육 위주로 ‘복싱 근육’을 만들었다”고 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실제 복서가 싸우는 것처럼 길거리 싸움 장면에서도 백스텝을 살짝 밟는다거나 연속으로 훅을 날리는 모습 등 디테일을 잘 살렸더라고요.”

복싱 선수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캐릭터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복싱에 뛰어드는 것은 이제 한물간 이야기. 김주영 교수는 “과거 영화엔 불우한 가정에서 복싱으로 챔피언이 돼 부와 명예를 얻는 성공 스토리가 많았지만, 요즘 현실에선 실업팀에 들어가면 연봉도 높은 편이고 다이어트 등 생활체육으로도 복싱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