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여름 축제가 한창인 잘츠부르크 도심의 모차르테움 극장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결선 무대 후 한 시간 넘게 청중 수백명이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Young Conductors Award) 콩쿠르 우승자 발표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주최한 이 콩쿠르 심사위원장 만프레트 호네크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이 걸어나와 발표한 이름은 스물아홉 살 신예 윤한결. 올해 54국 323명이 출전한 이 콩쿠르의 한국인 첫 우승이다.
이날 결선 무대에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를 지휘한 윤한결은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과 모차르트 아리아에 이어 신동훈의 창작곡 ‘쥐와 인간의’, 멘델스존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를 연주했다. 신예답지 않게 지휘는 명쾌했고 에너지가 넘쳤다. 윤한결은 다양한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소규모 챔버오케스트라인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단원들과 소통하면서 대편성 오케스트라 못지 않은 장엄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정교한 계산과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돋보였다. 공연 직후 만난 윤한결은 “어제 리허설 때는 땀을 많이 흘렸는데, 오늘은 긴장한 탓인지 더위도 못 느꼈다”고 했다.
피아노, 바이올린이나 성악 콩쿠르는 한국이 휩쓸지만 지휘만큼은 예외. 그렇기에 윤한결의 우승은 더욱 의미 있다. 2010년 출범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차세대 스타 지휘자를 배출하는 콩쿠르로 유명하다. 영국 버밍엄 심포니 수석 객원 지휘자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 네덜란드 국립오페라 상임지휘자 로렌조 비오티,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음악감독 아지즈 쇼카키모프 등 이 대회 우승자들이 지휘계 샛별로 떠올랐다.
모두들 결선무대에 진출한 최종 3인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최국 프리미엄에 무대 경력까지 앞섰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쟁자인 벨라루스 지휘자는 독일 주요 극장의 차기 상임지휘자로 결정된 터였다. 이때문에 윤한결 스스로도 의외라고 생각할 만큼, 그의 우승은 이변이었다.
대구 출신인 윤한결은 서울예고 1학년에 입학한 직후 자퇴하고 뮌헨 음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했다. 어릴 때는 주의 산만한 ‘문제아’였다고 한다.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선생님이 시키는 연습은 안 하고 혼자 엉뚱한 곡을 만들어서 쳤어요. 얼마나 연습을 안 했던지 모차르트 소나타 하나를 초등학교 내내 쳤으니까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의 영향력은 세계 최고 여름 클래식 축제로 꼽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차세대 지휘자를 키우기 위해 강력하게 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콩쿠르 심사위원이 대부분 주요 극장장이나 페스티벌 예술감독 출신들이기에 연주 기회도 많이 따낼 수있다. 2년마다 열리는 콩쿠르 우승자는 다음 해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오스트리아 라디오 방송 오케스트라(ORF)를 지휘할 기회를 주고 공연 실황은 CD로 발매한다.
윤한결은 2019년 메뉴힌 페스티벌에서 네메 예르비 지휘상을 받았고 베른 심포니에 데뷔했다. 작년 4월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에서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아스코나스 홀트에서 교향악 축제 영상을 봤다면서 공연 영상을 좀 더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한국에서 지휘한 영상을 보고 연락했다길래 저도 신기했어요.” 아스코나스 홀트는 사이먼 래틀, 정명훈 등이 소속된 영국의 세계적 클래식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다. 윤한결은 작년 11월 이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잘츠부르크 결선 현장에 온 아스코나스 홀트 매니저 잭 하이네스는 “윤 지휘자의 경력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주요 오케스트라의 섭외가 잇따를 것 같다”고 기대했다.
윤한결에게 어떤 지휘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만프레트 호네크가 제 모델입니다. 겸손하고 친절하지만 음악만은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고집을 배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