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시계 방향으로)데뷔 전부터 밀리언셀러가 된 신인 그룹 제로베이스원, 여성 솔로 최초 초동 밀리언셀러가 된 블랙핑크 지수, 지난 5월 K팝 초동 신기록을 쓴 그룹 세븐틴, 이달 초 초동 밀리언셀러가 된 그룹 뉴진스. /웨이크원·YG·플레디스·어도어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는 최근 앨범을 발매하기도 전 선주문량 500만장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신인 그룹 제로베이스원은 지난달 10일 데뷔 첫날 124만장을 판매해 밀리언셀러(100만장 이상 판매)에 등극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K팝 그룹들의 국내·외 음반(실물 CD) 판매량이 연일 고공 행진을 기록하면서 연내 ‘K팝 1억장 시대’가 열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음반콘텐츠협회가 집계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 1~5월까지 국내 인기 상위권 400개 K팝 음반의 누적 판매량만 4290만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520만장 많았다. 지난해 총 판매량이 7700만 장임을 감안하면 훨씬 빠른 성장세다. 올해 상반기 K팝 밀리언셀러 음반은 13장으로, 전년 7장보다 6장 늘었다.

K팝 음반 판매량을 주도 중인 방탄소년단과 뉴진스의 음반기획사 ‘하이브’도 올해 유독 큰 성장을 기록했다. 하이브는 8일 지난 상반기 자사에서 낸 음반 판매량이 총 2270만장으로, 지난해 1년 판매량(2220만장)을 넘어섰다고 공시했다.

K팝 전체 음반 수출액 역시 상승 중이다. 관세청이 집계한 지난 상반기(1~6월) K팝 음반 수출액은 전년보다 17.1% 증가한 1억3293만달러(약 1685억원)에 달했다. 역대 최고치다.

업계에선 K팝 CD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잘 팔리고 있다고 추정한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집계한 추정치에 따르면 2020년 해외로 팔린 K팝 CD는 2587만장으로, 국내 판매량(1695만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일부 해외 팬의 지갑 씀씀이만 계속 커진 결과인지, K팝 팬덤 전체 규모도 같이 성장한 덕인지 가늠하려면 과거 발매 음반(구보) 판매량 수치를 봐야 한다. 구보는 K팝 시장에 신규 유입된 해외 팬들이 주로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써클차트가 2023년 상반기 판매 음반 400개 중 2022년 7월 이전 발매된 과거 발매 음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2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특히 미국, 독일 등 과거 K팝 음반이 잘 안 팔리던 지역에서의 판매량이 지난해부터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기존 팬덤 간의 ‘초동 숫자’ 경쟁도 K팝 음반 판매량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음반 발매 후 일주일간 판매량’을 뜻하는 이 숫자는 본래 2000년대 초까지 국내보다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많이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가요계에서도 각 K팝 그룹의 ‘성적표’처럼 많이 쓰인다. 음반 발매 초반에 판매량이 높아야 각종 음원 사이트와 방송 순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동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통상 달성이 어렵다고 여겨졌던 ‘솔로’와 ‘걸그룹’에서도 초동 밀리언셀러가 줄줄이 탄생하고 있다. 솔로에선 BTS 지민, 블랙핑크 지수가, 걸그룹에선 르세라핌, (여자)아이들, 아이브, 엔믹스 등이 초동 100만장을 넘겼다. 보이그룹에선 세븐틴과 스트레이키즈가 각각 초동 455만장과 456만장을 넘기며 연달아 역대 K팝 초동 기록을 경신했다. BTS 기록(337만장)도 훌쩍 넘어섰다.

코로나 이후 ‘대면 팬사인회’가 다시 활성화된 것도 최근 K팝 음반 판매량 신기록이 잇따른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앨범 속 사인회 추첨권을 얻기 위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들까지 보따리상을 통해 음반을 대량 구매 중이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중국 팬들이 특히 손이 크고 직접 영수증으로 소셜미디어에 구매 인증을 한다. 최근 광저우에서 사인회를 연 한 보이그룹의 팬 사인회를 가기 위한 음반 구매 컷이 6000장이었다”고 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팬데믹 시기부터 새로 생겨난 비대면 영상 팬사인회까지 유지되면서 팬덤의 추첨권 열망이 더욱 커진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세계 음악 시장의 음반 판매량은 K팝과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미국레코드산업협회(RIAA)에 따르면 세계 1위 규모인 미국 음악 시장에서의 CD 판매량은 계속 하락 추세로, 지난해 총판매량은 3300만장이었다. 같은 해 4100만장 팔린 LP보다도 적게 팔렸다. 벌어 들인 판매액도 스트리밍 음원, 디지털 음반 등을 포함한 지난해 전체 미국 음악 시장 수익의 4.6%에 불과했다. 차우진 평론가는 “높은 실물 음반 판매량이 세계 음악 시장에선 이제 K팝 산업만의 고유 특성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선 사실 전통 실물 음반 시장이 시들해지면서 가수들이 음반보단 ‘공연’ 수익을 중점으로 여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