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재건된 대한제국 영빈관인 덕수궁 돈덕전이 붉은 벽돌과 푸른 창틀로 화려한 박물관이 됐다.
돈덕전은 고종이 즉위 40주년 기념행사장으로 사용하려고 세운 서양식 건물로 외교를 위한 영빈관과 알현관으로 사용했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한 역사적 장소였으나 1920년대 일제가 철거했다.
문화재청이 2015년부터 덕수궁 복원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돈덕전에 대한 2017년 발굴조사, 2018년 설계를 거쳐 2019년 시작한 재건 공사을 지난해 12월에 마쳤다.
이후 진행된 전시를 위한 자료조사와 공간설계는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해 전시물 제작·설계, 인테리어를 거쳐 지난 24일 마무리했다.
이틀이 지난 26일 오전 정식으로 문을 연 돈덕전에는 빗속에도 전시를 관람하려는 국내외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제국 주권 수호 의지 담긴 서양식 영빈관 돈덕전은 대한제국 외교 공간으로 기획된 건물이었다. 고종이 1902년~1903년 즉위 40주년 칭경예식에 맞춰 서양열강과 대등한 근대국가의 면모와 주권 수호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려고 황궁에 서양식 영빈관으로 지었다.
칭경예식은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축하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전통식과 서양식이 혼합된 예식이다. 대한제국은 이 행사를 통해 황제 위상을 높이고, 국제 사회에서 중립국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하려 했다.
콜레라 창궐로 국제행사는 치러지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 국내행사로 축소돼 전통방식 예식만 덕수궁 경운궁에서 거행됐다.
건립 목적은 돈덕전이란 현판에 드러난다. '돈덕(惇德)'의 뜻은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해 어진 이를 믿는다”라는 의미로 중국 고대 문헌 '서경'의 '순전'에서 유래했다.
'덕이 있는 자'는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할 여러 국가를 가리킨다. 이들을 후대하는 장소가 바로 돈덕전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진 이 건물 1층에는 알현실이, 2층은 침실이 자리했다. 황제가 외교사절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고, 외국 국빈의 숙소로 사용됐다.
1층 공적공간, 2층 사적공간으로 나뉘었던 석조전처럼 돈덕전도 층별로 공간 성격을 구분해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돈덕전도 일제강점기 풍파를 견디지 못했다. 고종 승하 후 방치됐던 돈덕전은 1921~1926년 철거됐다. 1933년 그 자리에 어린이 유원지가 만들어졌다.
◆ 붉은 벽돌과 푸른 창틀의 아름다움
문화재청은 2015년부터 다양한 고증자료를 수집해 2016~2017년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2019년 배수시설 추가발굴도 해 다양한 타일과 벽돌, 몰딩류, 보일러실 추정 지하유구를 확인했다.
재건공사는 2019년부터 올해 5월까지 추진했다. 문화재청은 이달까지 전시물 제작과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돈덕전을 전시관, 행사장, 도서-아카이브관 용도로 개방했다.
전의건 문화재청 복원정비과 사무관은 26일 "전시관으로 사용하려고 건축법, 소방법 기준을 검토하고, 지내력 등 안전도 고려해, SRC구조로 건물뼈대를 만들었다"며 "벽돌과 타일은 발굴·사진자료를 토대로, 최대한 복원해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재현된 붉은 벽돌은 수제로 제작됐다. 벽돌을 자세히 보면 질감과 색상이 제각각 미세하게 다르다. 아치부분, 기둥 끝부분, 지붕 시작 부분의 이형벽돌도 특수 제작됐다.
전 사무관은 "벽돌 문양도 고증자료와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문양을 적용했다"며 "청록색 오얏꽃 문양도 최대한 고증자료를 분석해 문양이 입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말했다.
오얏꽃 문양은 전주이씨 상징이자 대한제국 국장이다. 고증자료와 발굴조사에서 오얏꽃 문양이 건물마다 조금씩 다른 점도 발견됐다. 전 사무관은 "운현궁, 인정전, 석조전에 오얏꽃에는 겹꽃잎이 없는데, 돈덕전에는 있다"며 "꽃술도 비교적 많다"고 설명했다.
외관은 붉은 벽돌과 푸른 창틀로 꾸며진 돈덕전의 내부는 대한제국 외교사 중심 전시와 기록보관, 도서 열람, 국내외 문화교류와 예술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상설전시실Ⅰ과 기획전시실로 구성된 1층에는 고종 칭경예식 등 당시 대한제국을 담은 영상이 손님을 맞는다.
덕수궁관리소 박상규 학예사는 "100년 전 한국 근대 외교 시작과 전개를 돌아보면서 상호존중과 교류를 통해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던진다"며 "보편적 가치는 존중, 사랑, 우정, 협력, 창조"라고 설명했다.
2층에 한국 근대외교 주제로 꾸며진 상설전시실Ⅱ에는 외교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마지막 주영공사 이한응, 내부대신 민영환, 조선말 외교관 민영찬 등 대한제국 주권과 자주 외교를 지키려 노력했던 주요 인물들이 담긴 디지털 액자들이 걸려 있다. 1층과 2층 복도에도 서울 옛 풍경과 대한제국 시대 중요 인물들이 이 액자에 담겼다.
박 학예사는 "액자는 해리 포터 마법학교에 걸린 움직이는 액자를 모티브로 했다"고 말했다.
가구들과 조명등들은 20세기 초 서양 살롱이 모티브가 됐다. 박 학예사는 "내부 고증자료가 너무 부족해 복도 바닥은 출토된 타일을 근거로 깔았고, 천장과 벽등, 가구들은 그 시대 느낌을 살릴 수 있게 추정해서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아카이브실은 2층에 있다. 이곳에서 각종 도서와 영상자료 열람, 학술회의, 소규모 공연이 가능하다. 서화가이자 초대 주미공사관원 강진희(1851~1919)가 1883년 미국에서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기차 두 대를 그린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화차분별도'와 진관사 소장 보물 '서울 진관사태극기'도 있다.
박 학예사는 "아카이브실은 도서실 형태지만 포럼이나, 학술회의, 소규모 공연, 주한 외교관들의 모임이 가능하게 꾸몄고 1층 기획전시실도 국제행사가 가능하다"며 "이점이 돈덕전이 대한제국사를 전시하거나 아카이빙하는 다른 역사박물관들과의 차이점"이라고 자랑했다.
문화재청은 돈덕전을 역사적 공간 복원과 미래 문화교류 공공외교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전시는 덕수궁관리소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관람객 누구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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