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출품될 한국 영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다. 심사위원단은 선정 이유로 “아카데미를 감동시킨 영화 ‘기생충’에서 발견되는 계급이라는 화두를 다루고, K컬처, K무비의 경향에도 부합한다”고 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제작사 클라이맥스스튜디오의 직원들 사이에선 ‘디피토피아’라는 신조어가 인기다. 클라이맥스가 제작해 크게 성공한 OTT 시리즈 ‘D.P.’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합한 단어다.
클라이맥스는 ‘D.P’ 외에도 ‘지옥’(2021) ‘정이’(2023) 등 넷플릭스 글로벌 1위 콘텐츠를 여럿 만들었다. 티빙에서 공개된 ‘몸값’(2022)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변승민(41) 클라이맥스스튜디오 대표는 최근 서울 강남구 사무실 인터뷰에서 “창작자 한 명 한 명이 별이라면, 그 별을 잘 엮어 보기 좋은 별자리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원 플러스 원은 투(two)가 아니라 섬싱 뉴(something new)여야 한다는 원칙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변 대표는 한국외대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2009년 4월 투자배급사인 뉴(NEW) 공채 1기로 들어갔다. 뉴가 ‘영화계의 애플'로 불리던 시기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로 옮겨 글로벌 투자 실무를 익혔다. 클라이맥스스튜디오(구 레진스튜디오) 설립은 2018년. 당시만 해도 콘텐츠 시장이라는 링에 올라온 무명의 플라이급 선수였다. 변 대표는 아웃복서 스타일로 달려들었다. KO를 노리기보단 한 방 한 방 날리며 점수를 쌓아갔다. 권투선수가 쉬지 않고 움직여야 덜 맞는 것처럼,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설립하던 2018년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21편이나 된다. “아무리 4번 타자라도 3할 이상 치면 잘 친다고 하잖아요. 콘텐츠도 비슷해요. 70%는 실패하는 거죠. 중요한 건 자꾸 해보고 경험을 빨리 시장에 적용해보는 겁니다.”
가장 먼저 날린 펀치는 제작비 1억원 독립영화인 ‘초미의 관심사’였다. 테스트용으로 빠르게 만들었지만 수익을 냈다. 설립 직후인 2019년 넷플릭스와의 관계도 시작됐다. 변 대표는 투자배급사에서 근무하며 일찌감치 OTT의 가능성에 눈떴다. 특히 봉준호 감독이 영화 ‘옥자'(2017)를 넷플릭스와 만드는 것을 보고 확신을 다졌다. ‘‘저기가 미래다.”
“룰을 만드는 자가 될 수 있겠다고 봤어요. 룰을 따라가면 편할 순 있지만, 남들이 뺏을 수 없는 경험과 가치를 가질 순 없죠. 그래서 우선 뛰어들었습니다.” 2020년 카카오가 자체 OTT인 카카오티비를 론칭하며 첫선을 보인 드라마 ‘아만자’도 클라이맥스 작품이다.
변 대표는 축적을 믿는다. 따라서 실패도 없다고 본다. 이전 작품이 이후 작품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연의 축적을 중시한다. ‘원 플러스 원=섬싱 뉴’가 되는 마법도 인연이 있기에 가능했다. 2015년 변 대표가 단편영화 ‘씨 유 투모로우’를 만들 때 출연한 배우가 ‘지옥’으로 뜬 김신록이고, 조연출이 ‘몸값’의 전우성 감독이다.
극장 영화와 OTT 영화는 만들 때부터 차별점을 둔다. 극장 관객은 두 시간 동안 갇혀서 본다. OTT는 언제든 끊을 수 있다. 넷플릭스 순위는 시청 횟수가 아니라 시청 시간이 가른다는 점에서 큰 리스크다. 변 대표는 “초반 10~15분을 붙잡아두면 이후 몇 분이 지속되는지 등 시청 자료가 빅데이터로 축적돼 있다”며 “흥미를 일으킬 플롯을 시간대별로 어떻게 배치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한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보다 축소된 영화의 위상에 대해서는 “이제 영화는 문화 콘텐츠 중 1순위 매체가 아니고 모든 영상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며 “흐름이 완전히 바뀔지 또 다른 역사로 진화될지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플라이급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업계 대표 헤비급 선수다. 이미 링이 너무 좁다. 변 대표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몸값’을 뮤지컬로 만들어 해외에 진출할 목표다. 런던 출장 때 웨스트엔드 관계자도 만났다. 한국 점유율이 낮은 애니메이션 시장도 노린다. 내년 공개 예정인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은 넷플릭스 최초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기술력의 도움이 크기 때문에 같은 퀄리티라도 훨씬 빠르게 저비용으로 만들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콘텐츠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만 안주해선 미래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자만 살아남는 시대,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달려들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그래서 재밌는 시대를 끌어가기 위해 계속 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