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영화, 음악 공연 같은 것을 보러 갔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에 쫓겨서 좀처럼 갈 수가 없었어요. 대학에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파업 같은 것들 때문에 수업도 없었고요. 그래서 대학 시절의 추억은 별로 없는데, 딱 한 번 와세다·게이오전(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지난 9월 28일 도쿄 와세다대학 오쿠마 기념 강당. 무대 위에 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말하자 1000석을 꽉 채운 청중이 숨을 멈춘 채 집중했다. 커다란 체크 무늬가 있는 회색 재킷에 고양이가 그려진 흰 티셔츠, 베이지 톤 면바지는 발목이 살짝 보이도록 접어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70대 중반이라곤 믿어지지 않게 ‘댄디한’ 차림. 이날 하루키는 직접 기획한 낭독회의 연사로 나섰다.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개관 2주년을 맞이해 열린 행사다.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하루키가 모교 와세다대학에 친필 원고와 서적, 음반 등 1만여 점의 자료를 토대로 지난 2021년 문을 열었다. 연극학부 출신인 하루키가 재학 중 자주 들렀던 연극박물관 인접 건물을 건축가 구마 겐고가 리모델링했다. 지상 5층, 지하 1층, 연면적 2100㎡. 리모델링 비용 12억엔은 하루키와 와세다대 동기인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이 기부했다.
지하 1층 카페 ‘오렌지캣’에선 학생들이 하루키 소설 ‘양을 쫓는 모험’에 나오는 명란 파스타를 만들어 판다. 가나가와현에 있는 하루키 서재도 재현해 놓았다. 1층 전시실에선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한 하루키 작품 초판과 전 세계에서 출간된 번역본들을 소개한다. 같은 층 음악 감상실에선 빌 에번스, 냇 킹 콜 등 하루키가 젊은 시절 운영하던 재즈 카페에서 틀었던 음반들을 들을 수 있다. 라이브러리에서 마주친 벨기에 번역가 루크 판 오트(60)씨는 “내가 번역한 책이 있는지 궁금해 들렀는데 놀랍게도 모든 책이 다 있다”며 감탄했다. 하루키 팬이라는 한국인 관광객 장윤희(45)씨는 “문학관이 주로 지방에 있는 우리와 달리, 대도시 한가운데에 이렇게 접근성 좋은 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사진 촬영은 자유.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친절한 직원들이 다가와 “기념사진을 찍겠냐”고 권한다. 단 촬영 구호는 “치~즈”가 아니라 “하루~키”다. 도쿄=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