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이충면(55) 외교비서관은 대학교 4학년 아들부터 세 살 막내딸까지 ‘다섯 자녀’ 아빠다. 내년이면 유치원과 초·중·고교, 대학까지 한 명씩 다닌다. 외교관은 해외 근무가 많아 자녀를 여럿 두는 경우가 많지 않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도 애가 다섯이라고 하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한다. “Same mother(엄마가 같은 사람)?”
이 비서관은 1992년 외무고시 합격 후 스위스, 나이지리아, 중국 등에서 근무했다. 대통령실에도 여러 번 파견 나가 주말도 없이 새벽 5시 출근, 밤 11시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삶 속에서 최고 행복이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는 “직장도, 외교도 전부 전투잖아요. 각박한 생활을 하다가 집에서 아이들이랑 놀고 산책하면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있을 땐 꾸밀 필요도 없고, 계산적일 필요도 없잖아요. 제가 충전하는 시간입니다”라고 했다.
이 비서관은 미국 워싱턴 연수를 갔을 때 만난 교포 이승은(46)씨와 다섯 아이를 뒀다. 당시 한인학생회에 지역 안내를 부탁했는데 차를 몰고 등장한 사람이 지금 아내다. 결혼 초엔 ‘아메리칸 스타일’로 하나만 낳기로 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 근무 중 세 살이던 첫째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당시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 공관은 외교관 1명만 근무하는 ‘1인 공관’이었는데 ‘대우건설 직원 납치 사건’이 터져 아이 치료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상태가 심각했다. 현지 병원의 헝가리 출신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할 정도였다. “아이는 겨우 살아났지만 그 일을 겪고 나서 ‘애가 하나면 안 되겠구나. 인위적으로 (출생을) 조절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아이가 생기는 대로 낳다 보니 다섯이 됐습니다.”
아내 이씨는 첫째를 낳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23년째 육아 중이다. 아이 셋은 한국에서, 둘은 중국에서 낳았다. 나라를 옮길 때마다 학교부터 병원까지 혼자 알아보고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남편이 바쁘다 보니 “싱글 맘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독박 육아’에 불만이 많을 법도 하지만 이씨는 “사람들이 자기가 선택한 직장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듯 저도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해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도 제가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외벌이 공무원 월급에 가족이 많아서 살림살이를 아껴야 했다. 차는 소형차 모닝을 탄다. 해외 이사가 잦아 비싼 큰 차를 몰기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가족 모두가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국어·수학 같은 사교육을 시킨 적도 없다. 다섯명 학원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시험 기간이 되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비서관이 직접 ‘일타 강사’가 된다. 그는 “학창 시절 암기하고 요약하는 데는 도가 터서 중학교 과정까지는 커버가 가능하다”며 “직접 가르쳐 주면, 애들이 웬만하면 90점을 넘더라”고 했다.
다섯 자녀를 키우면서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다. 과거 ‘1자녀 정책’이 있었고 최근엔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중국에서 아이 다섯을 데리고 천안문 같은 관광지를 가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다. 중국에선 아이가 많으면 소수 민족이거나 엄청난 부자이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비서관이 대학생이 된 첫째와 막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이웃 주민이 “할아버지가 되게 젊다”면서 쳐다봤다. 그래도 첫째 아들은 “나도 다자녀를 낳겠다”고 말한다. 형제 많은 가정에서 자라는 것도, 부모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늘면서 부부의 가치관도 달라졌다. 아이가 꼭 일류 대학을 가서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이 줄었다. 동시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마다 각자의 길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한 가지 방향으로 몰고 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 비서관은 “아이들이 별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커서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하며 살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라고 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이 비서관의 예민한 성격도 다소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는다. “애들이 다치거나 없어지는 것, 그거 말고 이 세상에 더 큰 일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부는 몇 년 전부터 여섯째 입양을 시도하고 있다. 삶의 활력소인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여섯째 욕심이 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가 나이도 있으니 출산보다는 입양을 원했다. 그런데 국내 입양 기관에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거절당했다. 아빠 나이가 많고, 본인 자녀가 다섯이나 있는데 또 입양을 하려는 데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부부는 해외 입양도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부모 나이가 60세가 넘으면 아예 입양이 안 된다고 해서 60세까지 남은 5년간 계속 시도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다섯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이 비서관은 ‘노후 준비’도 하고 있다. 이르면 5년 후 정년 퇴직인데 아이들이 한창 학교를 다닐 나이라 경제 활동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 공인중개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한국어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청소년 상담사,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도 마지막 단계를 남겨 두고 있다. 아내 이승은씨도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땄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부부는 세계 최악인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아이를 키우는 주부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이승은씨는 “지금은 육아를 아무도 안 하려고 하는데, 여성들이 ‘육아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나라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통장을 개설하러 은행에 갔는데 직업 선택 사항에 ‘주부’가 없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무직에 체크하라’고 해서 속상했다”고 했다. 이 비서관은 “지하철을 탔을 때 아이가 울면 사람들이 엄청 눈총을 주고 얼굴을 찌푸린다”며 “20여 년 전에 첫아이 키울 때와 비교해서 점점 더 아이 키우기 힘든 문화가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사람들 인내심도 떨어지고,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인내심도 떨어지니 누가 아이를 낳겠습니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