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의 최민식이 용맹한 이순신, ‘한산’의 박해일이 지략가 이순신이라면, ‘노량’의 김윤석은 고독한 이순신이다. 모두가 “이미 전쟁은 끝났다”고 할 때, 이순신은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퇴각하는 왜구를 마지막까지 쫓아간다. /빅스톤픽쳐스

“이순신 장군님께 박수. 이 영화는 지루함을 꼬집으면서 볼 영화가 아니다.” vs “시종일관 강약 없는 비장은 실소를 유발한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2014)은 평가가 뚜렷하게 갈렸다. 이순신 해전 3부작의 마지막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도 9년 전과 똑같이 호불호가 나뉠 듯하다.

20일 개봉하는 ‘노량’은 위대한 구국 영웅,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가족애와 전우애, 압도적인 해전 스케일까지 ‘천만 영화’ 명량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명량을 재밌게 봤다면 노량도 같은 이유로 좋을 것이고, 명량이 아쉬웠다면 같은 이유로 아쉬울 것이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빅스톤픽쳐스

‘노량’은 임진왜란 7년째인 1598년, 퇴각하는 왜군을 한 명도 빠짐없이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다. 압권은 역시 해전 장면이다. 실제 노량 해전이 조선과 왜, 명나라까지 1000여 척이 참전한 대규모 해전이었던 만큼, 장장 100분 동안 최후의 전투에 걸맞은 스케일을 보여준다. 삼국의 함선끼리 격렬하게 부딪치며 각국의 신식 무기를 총동원한 포격전, 선상에서 병사들이 총칼을 휘두르며 몸으로 맞붙는 백병전이 박진감 넘치게 이어진다.

실제 바다 위에서 촬영한 ‘명량’과 달리 ‘한산: 용의 출현’부터는 VFX(특수 효과) 기술로 물 한 방울 없는 세트장에서 바다를 만들어냈다. 평창 올림픽 때 쓴 강릉 아이스링크에 3000평 규모 세트를 짓고 실제 판옥선 크기와 가까운 배들을 만들어 촬영했다. 김한민 감독은 12일 간담회에서 “단순히 치열한 전쟁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아비규환의 중심에 서 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보여주려 했다”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각기 다른 이순신의 매력을 비교하는 것도 이 시리즈물의 재미다. 김 감독은 ‘명량’에선 용장(勇將), ‘한산’에선 지장(智將), ‘노량’에선 현장(賢將)으로서 이순신을 표현하려 했다. ‘노량’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은 특유의 묵묵한 표정으로 전사한 아들과 전우들에 대한 부채 의식을 짊어진 고독한 이순신을 그려냈다.

하지만 ‘명량’에서 비판을 받았던 과잉된 감정은 걸림돌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비장한 음악과 아들 잃은 아비의 슬픔으로 관객을 설득하려 한다. 극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선 울지 않으면 ‘매국노’가 될 것 같은 압박까지 든다. 다들 끝난 전쟁이라고 말리는데도 마지막까지 왜군을 쫓다 최후를 맞이한 이순신의 고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빅스톤픽쳐스

배우 김윤석은 “‘속내는 가늠할 수 없지만 신념에 찬 단호함이 있고, 전보다 더 외로워진 이순신 장군을 표현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면서 “다시는 이 땅을 노릴 수 없게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려던 이순신 장군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가장 고민이 컸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왜장이 도망치기 위해 명나라 장수에게 뇌물을 바치고, 조·명 연합 수군이 와해될 위기에 빠지는 등 삼국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다. 해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나, 일본의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30㎏짜리 갑옷처럼 삼국의 서로 다른 의상과 무기, 함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왜군 최고 지휘관 시마즈 역의 백윤식, 명나라 도독 진린 역의 정재영, 부도독 등자룡 역의 허준호는 외국어 연기에도 장수에 걸맞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왜군 역을 맡은 배우 이규형은 “일본어 선생님을 네 분이나 붙여줬다. 코로나 시국이라 화상으로 일주일에 3~4번씩 수업했다”고 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왜군 최고 지휘관 시마즈 역을 맡은 배우 백윤식. /빅스톤픽쳐스

평균 이상 재미와 완성도가 검증된 시리즈물이고, 이순신 3부작의 완결편이라는 점에서 흥행을 예상하는 이가 많다. 마동석의 주먹만큼이나 왜선들을 모조리 격파하는 거북선의 카타르시스는 포기하기 어렵다. 역대 관객 수는 ‘명량’ 1761만, ‘한산’ 726만으로 ‘노량’이 513만을 넘기면 ‘범죄도시’에 이어 합산 3000만을 돌파하는 두 번째 시리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