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부활한 엑스맨(X-men) 시리즈가 위기에 빠진 마블의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20일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마블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엑스맨 ‘97′은 1992~1997년 미국에서 방영된 TV 만화 엑스맨의 속편이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비디오로 출시되고 케이블 채널로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다.
엑스맨 시리즈는 돌연변이(뮤턴트)로 차별받는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으로 애니메이션·영화로 만들어지며 큰 사랑을 받았다. 엑스맨 ‘97은 리메이크가 아닌 1997년 종영 시점부터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 수장이었던 찰스 자비에를 잃고 뮤턴트들은 혼란에 빠진다. 여전히 뮤턴트를 배척하는 인간과 갈등하면서도,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한다. 1·2화 공개 후 외신들은 “사랑받았던 애니메이션의 값진 속편”(버라이어티), “향수와 신선함 사이에서 성공적인 균형을 이뤘다”(할리우드 리포터) 등 호평을 내놨다.
무엇보다 마블의 위기를 불러온 단점들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PC)을 위해 캐릭터를 무리하게 수정하거나 계몽적인 스토리를 끼워넣지 않고, 원작을 충실히 되살렸다. 인기 캐릭터인 매그니토, 울버린, 스톰, 비스트도 그대로 등장한다. 전작들을 챙겨보지 않으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던 복잡한 세계관도 사라졌다. 전작의 줄거리와 각 캐릭터의 능력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줘 처음 본 이들도 무난히 즐길 수 있다.
지난해 ‘더 마블스’ ’위시’ 등 줄줄이 흥행에 실패한 이후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창작자들이 최우선 목표가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게 우선이지, 사회적 메시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반성을 내놨다. 사내 문화를 바꾸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만큼 올해 디즈니 콘텐츠들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3D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인 시대에 90년대 2D 스타일을 고수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화려한 액션과 합이 척척 맞는 팀플레이, 능청스러운 유머로 히어로물의 미덕을 두루 갖췄다. 매끈하고 선명하게 부활한 90년대풍의 작화로 엑스맨을 기억하는 1980~1990년대생의 향수를 자극하고, 레트로에 열광하는 10대·20대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 듯하다.
마블의 최근작에 실망이 컸던 히어로물 팬이라면, 오프닝부터 가슴이 뜨거워질 것이다. 만화 주제곡 중에서도 명곡으로 손꼽히는 원작의 오프닝곡을 그대로 가져와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을 누를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을 떠난 성우들을 제외하면 30년 전의 성우들이 대부분 그대로 참여해 원작을 제대로 계승했다.
엑스맨 ‘97은 디즈니가 2019년 21세기 폭스를 인수해 엑스맨 판권을 갖게 된 이후, 마블 스튜디오에서 내놓는 첫 번째 엑스맨 프로젝트로 공개 전부터 팬들의 기대가 컸다. 앞서 지난해 ‘더 마블스’에서도 쿠키 영상(엔딩 크레디트 사이에 나오는 짧은 영상)을 통해 엑스맨의 합류를 예고한 바 있다. 엑스맨이 꺼져가는 마블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