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만화가 마영신(42)의 작업실. 10평 남짓한 공간엔 만화 작업을 위한 모든 것이 있는 듯했다. 연필, 지우개, 잉크 펜, 컴퓨터, 그리고 간이 침대까지. 컴퓨터로만 작업하는 대다수 만화가와 달리,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스캔하는 방식을 데뷔 때부터 고수해 왔다. “펜으로 그리는 건 빠르고 직관적입니다. 원화(原畫)도 남아서 좋아요. 수정은 불편하지만, 태블릿으로 구현할 수 없는 맛이 있습니다.” 하나 어색한 물건이 있었다. 작업실 한구석을 차지한 일렉기타. 다만 큰돈을 들여 일렉기타를 산 이유는 분명했다. “록이 안 들리는 세상이잖아요.”

만화 '남동공단'의 주인공 김종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마영신의 만화는 록 음악과 결이 비슷하다. 유행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많은 이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2007년 데뷔해 트랜스젠더·장애인·반려견 등 다양한 소재를 웹툰에 담아 왔다. 그의 이름을 크게 각인한 웹툰 ‘엄마들’은 중년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조명한 작품. 어머니들이 20대 못지않게 사랑하고 상처받는 이야기와 청소 노동자로서 겪는 부조리를 다뤘다. ‘엄마들’은 2021년 ‘만화계 오스카상’이라는 미국 하비상 최우수 국제 도서 부문에서 수상했고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으로 올해 프랑스에서 만화상 최종 후보에 두 차례 오르기도 했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와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이다.

웹툰 '19년 뽀삐'에서 강아지 뽀삐가 주인을 핥는 모습. /카카오엔터테인먼트

2015년 연재한 ‘엄마들’이 지금까지 해외에서 호평받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작품 팔자가 그런 듯하다”고 짧게 답했다. 대신 “프랑스가 해외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이 ‘프랑스인들이 왜 우리를 평가하는 거지?’ 싶다가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프랑스 상은 100년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은) 작품에 권위를 주면서 동양 문학을 그쪽으로 포섭하는 셈인 거죠. 한국은 어떤가요. 상업성을 보고 작품에 투자할 뿐 작가와 작품을 키우지 않아요. 웹툰 시장 규모는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웹툰 '엄마들'에서 주인공 소연(왼쪽)이 꽃집 여자와 남자 친구를 두고 싸우는 장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마영신은 “지금 웹툰 업계엔 경쟁만 남았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데 내부가 썩어가고 있어요. 플랫폼이 점점 커지면서 웹툰 작가가 사실상 개인 사업자가 된 거죠. 작가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 플랫폼의 몇 순위냐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 유행에 따르는 비슷한 작품들이 나와 개성이 사라지고, 독자는 웹툰에 질리는 악순환이 생겼어요.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긴 관점에서 봐야 할 때입니다.”

그가 웹툰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재미’다. “웹툰은 재밌어야 해요. 특히 제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시대의 이야기를 조금씩 다르게 담아 왔어요.” 작가 자신과 주변인의 삶에서 작품 구상을 시작해 왔다. 젊은 예술가들을 소재로 그린 웹툰 ‘아티스트’에는 작가의 분신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 사람을 다루면 자연스럽게 그 시대까지 다루게 되잖아요. ‘엄마들’은 어머니 이야기에서 시작했어요. 다른 작품들의 행동, 말투, 이름도 제 경험에서 많이 따 왔습니다. 주로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많이 영감을 받아요. 제 작품이 볼만하다면, 그만큼 제가 사람들에게 지치고 데였다는 겁니다.”

여전히 자신의 옛 작품을 보며 ‘이런 대사가 있었어?’라며 재미를 느끼는 작가다. 과거 그린 모든 작품이 재미있어 스스로 대표작을 고를 수 없을 정도. 그러나 그는 올해를 끝으로 당분간 웹툰에서 손을 뗀다고 했다. “만화는 책으로 내겠지만, 한번쯤 웹툰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작품 지키려고 내린 결정입니다. 제 작품은 제 마음대로 해보고 싶어서요.”

쉬겠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에는 단편 독립 영화 두 편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 올해 웹툰 플랫폼 쇼츠에서 록 음악 소재 만화 연재를 앞두고 있다. “제가 쉬지 못하는 기질입니다. 항상 이야기란 틀을 열어두고 있어요. 그 안에서 놀며 괜찮은 게 나오면 만화로 만들 수도 있는 거죠.” 그는 자신이 ‘리트머스 종이’ 같다고 했다. “저는 제가 경험한 세계를 흡수해서 작품으로 보여줘요. 앞으로 다른 세상을 보면 또 달라질 수 있겠죠. 미학적으로든 형식적으로든 깊이 있는 만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인간 내면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가능하겠죠.”

☞마영신

만화 잡지 ‘팝툰’에 2007년 ‘뭐 없나?’를 연재하며 데뷔했다. 사회성 짙은 주제를 직설적이면서 해학적으로 그린 만화를 여럿 발표했다. 2015년 레진코믹스에 연재한 ‘엄마들’은 어머니의 경험에서 착안해, 중년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조명했다. ‘엄마들’은 2021년 미국 하비상 최우수 국제 도서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