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챗GPT’로 돌풍을 일으켰던 오픈AI가 최근 새로운 버전의 AI 서비스를 시연해 화제다. ‘GPT-4o’라는 이 모델은 사뭇 자연스럽고 인간적 소통도 가능해 보였다. 부드러운 톤으로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하니 그렇게 했고, 수학 문제를 풀어달라고 하니 카메라로 문제를 읽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였다. 중간중간 사람에게 농담도 건넸다.
이 시연 영상을 보며 많은 이가 영화 ‘Her’를 떠올렸다. 영화 속 주인공은 AI 서비스 ‘사만다’를 쓰면서 점차 사만다와 유대 관계를 맺는다. 나중에 둘은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나를 위해주는 상냥함, 서로 잘 맞는 유머 코드까지. 사만다와 주인공은 천생연분 같았다. 주인공은 스마트 기기를 들고 다니며 어디서든 연인과 함께했다. 누구든 쓸 수 있는 범용 서비스지만, 주인공에겐 단 하나의 ‘사만다’였다.
이런 SF 속 설정이 현실이 되는 걸까. 인간이 로봇에 애착을 갖고 특별한 관계를 맺는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2017년 일본에선 로봇 강아지 ‘아이보’의 합동 장례식이 치러졌다. 부품 조달 등에 문제가 생겨 2014년부터 수리 서비스가 중단되자, 더는 작동하지 않는 AI 로봇 강아지를 위해 주인들이 장례식을 연 것이었다. 주인들은 로봇 강아지와의 작별을 슬퍼하며 자신의 말벗을 추억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대 관계를 맺는 대상이 굳이 인간일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에는 소위 ‘가상 인간’이라 불리는 인플루언서들이 가상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면 대댓글을 남기며 소통하기도 한다. 한때 ‘이루다’라는 AI 챗봇이 서비스를 종료했을 때 일각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가족,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과 속마음을 AI 챗봇에게 털어놓았더니 위안이 되더라는 후일담도 있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경험하게 될 인간 관계는 ‘인간 대 인간’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벽의 문양을 보고도 인간의 형상을 떠올릴 정도로 사회적 동물인 까닭이다. 그러한 특성은 인간이 아닌 대상에 대해서도 인간적 맥락을 발견하고 유대 관계를 맺으며 의미를 부여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를 통해 AI는 앞으로 인간이 일평생 겪을 커뮤니케이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AI가 우리 관계를 ‘디지털화’하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