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정의 구현을 외치는 세상,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더 고단하다. 9년 만에 돌아온 2편에선 서도철이 영웅을 자처하는 연쇄 살인범 해치를 쫓으며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CJ ENM

‘베테랑’의 서도철과 ‘범죄도시’의 마석도는 닮은 점이 많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며, 법보다 빠른 주먹으로 통쾌함을 줬다. 4편까지 탄탄대로를 질주한 마석도와 달리 ‘베테랑2′의 서도철은 가시밭길을 택한 듯하다. 9년 만에 돌아온 ‘베테랑2′는 1편에 대한 뼈 아픈 반성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 영화 역대 흥행 5위(1341만) 영화 ‘베테랑’의 속편이 13일 개봉한다. 여전히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이번엔 연쇄살인범 ‘해치’를 쫓는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은 흉악범들을 응징하는 해치는 ‘다크 히어로’로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1편에선 정의로운 형사와 망나니 재벌의 선악 구도가 명확했다면, 2편에선 자신을 ‘선’이라 확신하는 이들의 무서움을 보여주며 서도철의 주먹을 멈칫하게 한다. 악을 처단하며 쾌감을 주기보다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그래픽=양진경

유머는 전편보다 줄었다. 권선징악 판타지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에 더 가까워졌다. 시의적절한 주제지만 앞서 ‘비질란테’나 ‘살인자ㅇ난감’ ’노 웨이 아웃’까지 사적 제재를 다룬 드라마가 수없이 나온 터라 기시감이 든다. “어이가 없네”(유아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황정민), “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마동석) 등 수많은 명대사를 남긴 전편에 비해 귀에 쏙 꽂히는 대사가 없는 점도 아쉽다.

액션은 전편만큼이나 유려하다.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아 배우들끼리 “정형외과 액션”이라고 할 정도로 고난도 액션 장면이 이어진다. 1편이 한국 영화 최초의 명동 8차선 추격신으로 회자됐다면, 이번엔 남산이다. 남산 계단에서 찧고 구르며 펼치는 액션이나, 폭우 속에서 물웅덩이를 미끄러지며 사투를 벌이는 액션은 배우들의 연골이 걱정될 정도로 격렬하다. 도박장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디스코, 어두운 뒷골목에서 흐르는 노래 ‘나의 옛날 이야기’처럼 장면과 잘 어우러지는 음악도 보는 맛을 더한다. 류승완 감독의 전작 ‘밀수’로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받은 가수 장기하가 또 한 번 음악감독을 맡았다.

해맑고 순수한 얼굴로 로맨스 주인공을 주로 맡았던 배우 정해인이 이번엔 속을 알 수 없는 연쇄살인범으로 변신했다. /CJ ENM

1편 조태오(유아인)의 뒤를 이을 빌런이 누가 될지 큰 관심사였다. 배우 정해인이 형사를 가장한 연쇄살인범 박선우 역을 맡았다. ‘엄마 친구 아들’의 표본 같은 얼굴로 악역 연기에 도전한다. 그동안 보여준 생글생글한 얼굴과 달리 엷은 웃음,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으로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표정을 보여준다. 기술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캐릭터의 전사나 범죄 동기가 드러나지 않아 전작의 조태오에 비해 설득력은 떨어진다. 9일 시사회에서 정해인은 “박선우는 내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신념에 올인하는 인물이다. ‘마녀사냥’을 대표하는 얼굴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했다.

불의를 보고 주먹이 앞섰던 서도철은 “선배님 보고 형사가 됐다”는 박선우를 보면서 머리가 멍해진다. 이 영화의 차별점은 주인공의 통렬한 반성이다. 1편에서 서도철은 친구와 싸우고 온 초등학생 아들을 보며 “남자는 다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말은 2편에서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서도철이 아들에게 “아빠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요즘 보기 드물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 역시 쉽게 분노하고 단죄하려는 영화 속 대중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 모른다.

추석 연휴에 개봉하는 유일한 텐트폴(성수기를 겨냥한 대작) 영화로 다른 배급사들이 ‘베테랑2′와의 맞대결을 피하면서 독주가 예상된다. 관객의 기대를 거스른 속편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류승완 감독은 “성공을 재탕하고 싶진 않았다. 이 인물과 세계관을 아끼는 만큼 전편과 다르게 모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