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54)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여성으로 최초 수상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이어 두 번째다.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한림원은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한 면을 강력하고 명료한 문체로 표현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 직후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강은 “너무 놀랍고 영광이다. 아들과 저녁을 먹다가 수상 전화를 받았다. 그냥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 이 뉴스가 한국 문학계에 좋은 소식이길 바란다”고 했다. “이 전화가 끝나면 아들과 차 한잔 마시면서 조용히 오늘 밤을 축하하려고 합니다.”
한림원은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며 “그녀는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노벨 문학위원회 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안나-카린 팜은 한강에 대해 “부드럽고 잔인하며 때로는 약간 초현실적인 강렬한 서정적 산문을 쓴다”고 했다.
2007년 작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뒤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0년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2014),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2021) 등의 소설을 쓰면서 역사와 트라우마의 문제에 천착한 것이 노벨상 수상에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안데르스 올손 스웨덴 한림원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중 있게 소개했다.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는 “역사 속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증인 문학(witness literature)이라는 장르에 접근해 간다”고 했다. 응어리 맺힌 한(恨)을 건드려 해소하는 살풀이적 성격이 짙다는 것. “한강의 스타일은 간결하지만, 우리의 기대에서는 벗어난다. 죽은 자의 영혼을 몸에서 분리해 자신의 소멸을 목격할 수 있도록 한다. 묻히지 못하는 신원 미상의 시체를 보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모티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애도의 과정을 그려내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최근작”이라고 칭하며 “1940년대 한국 제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그림자를 들추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간 한강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선을 그어왔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을 한국 작가 최초로 받은 뒤에도 기자회견에서 “노벨 문학상이 가까워졌다고 보나”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는데요”라며 가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시아 여성 최초이자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에 대해 외신은 “예상치 못한 일”이라면서도 “한국 문화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반영한 결과”라고 밝혔다.
미 뉴욕타임스는 한강이 수상자로 발표되자 “놀라운 일”이라면서 “이날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가인 여성 작가 찬쉐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수상의 영광은 예상을 뒤엎고 한강에게 돌아갔다”고 밝혔다. 또 “‘채식주의자’(2007)로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알린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과거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자 “우화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요소를 압축해, 문명적 삶을 궁극적으로 포기하는 개인의 삶과 그에 대한 전복을 간결하고도 날카로운 언어로 표현한 한국 문학의 선구자”라고 평한 바 있다.
미 ABC 방송은 “한강의 수상은 최근 몇 년간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작 ‘기생충’, 넷플릭스 서바이벌 드라마 ‘오징어게임’, 방탄소년단·블랙핑크 등 K팝 그룹의 세계적 인기 등 한국 문화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스타 작가라는 점도 강조하면서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내년 영문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스웨덴 아카데미가 밝힌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는 평에도 강한 동의를 표했다. 영국 가디언 역시 “한강은 그동안 여러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 가부장제, 폭력, 슬픔, 인간애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해 왔다”면서 “취약한 존재,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해 뚜렷하게 느껴지는 공감은 한강의 은유가 가득한 산문(metaphorically charged prose)을 통해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한림원이 밝힌 선정 이유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들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