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은 보기 드문 피아노의 시인(poet of the keyboard)이다.”
영국 지휘자 사이먼 래틀(69)이 3일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래틀은 세계 최고의 명문 베를린 필하모닉(2002~2018년)에 이어서 지난해부터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거장이다. 그의 말은 의례적인 덕담이 아니다. 래틀은 베를린 필 시절부터 내한 공연을 할 때마다 주저 없이 조성진을 협연자로 선택했다. 오는 20~2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내한 공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흥미롭게도 지난 세 차례 한국 투어를 모두 그와 함께했다. 조성진은 말 그대로 경이로운 존재(a marvel)이며 우리 모두는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했다.
한국 음악인들과의 인연을 묻자, 그의 기억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래틀은 여덟 살 적부터 고향 리버풀에서 아빠 손을 잡고 반바지 차림으로 말러 교향곡을 들으러 다녔던 ‘꼬마 음악 팬’이었다. 그는 “10대 후반에 이미 정명화(첼로)·정경화(바이올린)·정명훈(피아노·지휘)의 ‘정 트리오’를 알고 있었다. 지휘자가 된 뒤에도 유럽 전역에서 정경화와 함께 잊을 수 없는 협연을 했는데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정경화는 래틀과 함께 녹음한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음반으로 1994년 그래머폰 어워즈 협주곡 부문을 수상했다. 올해 쇼팽 연습곡 음반으로 같은 상을 받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30년 ‘수상 선배’인 셈이다.
2022년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세계 초연한 지휘자도 래틀이다. 래틀은 현대음악에 대해 꾸준하게 애정을 보이는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모든 음악은 처음엔 현대 음악이었으며 많은 고전 음악은 수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까다롭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관현악곡이기 때문에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래틀은 베를린 필에서 내려온 뒤에도 영국 런던 심포니에 이어서 지난해부터 뮌헨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독일 최고의 명문 악단 두 곳을 이끌게 된 것도 지극히 드문 경우다. 그는 “독일 북부 도시인 베를린이 거칠고 강인한 반면, 남부 뮌헨은 온화하고 여유 있는 도시”라면서 “마찬가지로 개성이 뚜렷한 멤버들이 가득한 베를린 필은 웅장한 전투를 벌이는 듯한 강렬함이 있다면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협력적이며 온화함과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고 평했다.
래틀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진취적인 프로그램들을 뚝심 있게 추진하는 혁신가이자 기획자의 면모다. 베를린 필 시절에도 청소년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베를린 필의 미래(Zukunft@Bphil)’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음악회를 생중계하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추진했다.
이번 뮌헨에서는 바흐와 헨델 같은 바로크 음악들을 작곡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해석하는 ‘고음악 연주회 시리즈’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현대음악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정평이 있다. 앞으로는 현대음악과 고음악의 양 날개로 날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그는 “지난해 바흐의 칸타타를 이미 연주했고 앞으로 매년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며 “주요 교향악단 가운데 처음으로 고음악 악기를 정기적으로 연주하는 악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수 밥 딜런을 연상시키는 더벅머리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그는 “머리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머리를 감은 뒤 알아서 자리를 잡도록 놓아둔다. 아마도 수년간 빗질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사이먼 래틀(69)
비틀스(Beatles)와 함께 영국 리버풀이 배출한 세계적 음악가. 10세부터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했고 15세에 지휘자로 데뷔했다. 불과 25세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뒤 18년간 재직하면서 명문 악단으로 성장시켰다. 2002~2018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면서 청소년 음악교육과 온라인 생중계 등 과감한 개혁 조치로 세계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해부터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