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옥매에게 빠진 ‘바람둥이’ 최멍텅은 옥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양담배 ‘칼표’를 구하러 경성에서 중국 안동현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현지 상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두들겨맞고, 세관 단속을 피하려 압록강을 건너다 물에 빠지는 등 고초를 치른다. 곡절 끝에 담배 꾸러미를 들고 경성역에 내린 최멍텅은 밀수 혐의로 순사에게 붙들려 경을 친다. 국내 신문 첫 네컷만화 ‘멍텅구리’의 에피소드다.(멍텅구리 만화보기 https://archive.chosun.com/cartoon/mtguri/mt2_content_wide.jsp?tid=mt110031001&tno=A) 조선일보 1924년11월10일~16일자에 실린 이 에피소드는 세수(稅收) 확보를 위해 총독부가 1921년 연초전매령을 공포하고 실시한 담배전매제를 배경으로 한다.
◇멋쟁이들의 인기품목 ‘칼표’ 담배
중국까지 가서 구할 만큼 귀한 ‘칼표’ 담배는 포장지에 칼을 든 해적이 그려진 영국산(産) 담배 ‘파이레트’(Pirate, 해적)이다. 1786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출범한 W.D. & H.O. Wills사(社)가 19세기 말 중국에 들여와 판매했다. 이 담배는 조선까지 넘어와 멋쟁이들이 즐겨 피웠다. 일본 니혼대에 유학한 극작가 이서구(1899~1981)는 “10개비 한 갑에 15전인가 한 칼표를 주로 피웠다”고 회고했다. 연초전매령 이후 잠시 양담배 재고판매를 허용하던 총독부는 이듬해부터 전매국원들이 전국을 돌며 단속에 들어갔다. 수입도 금지했다.
◇밀수업자는 물론 구입자도 처벌
1924년 12월 진남포 경찰서는 우연히 누군가의 외투주머니에서 세관 검사를 받지 않은 칼표 담배 한 갑을 발견했다. 수소문끝에 관할 지역에 등록된 진양환(鎭洋丸) 선원 김종현의 옷으로 확인하고 그의 집을 가택수색했다. 종이주머니속에 감춘 궐련 500개를 압수했다. 같은 배 선원 주학년, 정순팔 집에서도 각각 1500개, 500개의 궐련을 압수했다.(‘칼표 담배를 다수히 수입’, 조선일보 1924년12월22일)
1921년 7월 함흥경찰서 고등계 형사 서황은 외국제 담배를 밀수입 판매하다 파면당했다. ‘경찰관의 신분임을 불구하고 혜산진 방면으로부터 연초를 밀수입하여 어떤 요리점과 어떤 연초 잡화상하는 사람들에게 인지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비밀판매하여 부당한 이익을 도모하다가 당국의 발각된 바되어’(조선일보 1921년9월19일) 면직당했다.
◇총독부 담배장사, 금연운동 촉발
밀수한 양담배를 피운 사람도 처벌받았다. 1921년 8월 평안도 의주군 의주면 부면장 김학준은 경찰에 불심검문을 당했는데, 짐속에서 칼표 담배가 나왔다. 경찰이 “어디서 샀냐”고 묻자 “의주에서 윤수익에게 샀다”고 답했다. 김학준은 밀수한 양담배 칼표를 샀다는 이유로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양담배 단속이 엄격하다보니, 최멍텅의 말처럼 총독부를 향한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여보게, 총독부에서 담배장사를 하는 까닭에 저희 담배보다 나은 칼표에는 샘이 나서 조선 문턱에도 들이지 않는다네 그려.’ 총독부의 세수증가를 노린 담배장사는 1920년대 기독교와 사회단체에서 대대적으로 펼친 단연(斷煙)운동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산수화 대가 심산 노수현, 청전 이상범이 그려
1924년 10월13일 탄생한 국내 신문 최초의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는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1924년 9월 조선일보를 인수해 이상재 사장을 추대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 조선일보’의 기획이다. 미국 유학파 언론인 김동성(발행인)이 기획하고, 당시 신문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상협(편집고문)과 민세 안재홍(주필)이 스토리 구성을 맡았다. 산수화 대가인 심전(心田) 안중식의 양대 제자인 심산 노수현과 청전 이상범이 만화를 그렸다. 노수현과 이상범은 한국화를 정통으로 배운 예술인들이었다. 노수현은 광복 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내며 후학을 길렀고, 이상범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 작가로 떠올랐다.
◇‘멍텅구리’ 744편 조선닷컴 공개
‘멍텅구리’는 충청도 부농 아들인 키다리 최멍텅과 그 친구인 땅딸보 윤바람이 평양 출신 기생 신옥매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멍텅구리’는 1924년 10월13일 시작, 1927년 8월20일까지 연재됐고, 1933년2월 26일 재등장, 그해 8월2일까지 연재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만화는 ‘헛물켜기’ ‘연애생활’ ‘자작자급’ ‘가정생활’, ‘세계일주, ‘꺼떡대기’, ‘가난사리(살이)’, ‘사회사업’, ‘학창생활’, ‘또나왔소’ ‘모던 생활’ ‘기자생활’ 등 시리즈 12편이다. 본지는 지난 10월 11일부터 조선닷컴에 네컷만화 ‘멍텅구리’ 전편(744편)을 공개했다.
<멍텅구리 만화 보러가기 https://archive.chosun.com/cartoon/toon_comic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