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06번째 레터는 AI 영화 ‘나야, 문희’와 ‘엠호텔’입니다. 네, 이번달에 AI 영화 두 편이 나란히 정식으로 극장에서 개봉합니다. 처음이에요. ‘나야, 문희’는 24일 예정이고, ‘엠호텔’은 11일에 이미 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AI가 화두이고, 영화 쪽도 예외가 아닌지라, 당장이라도 AI를 쓰기만 하면 스태프를 확 줄일 수 있고, 시간도 왕창 단축할 수 있고,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영화 한 편을 뚝딱뚝딱 척척박사처럼 만들어낼 것 같이 얘기가 되고 있죠. 실제는 어떨까요. 관객이 일부러 영화관을 찾아가 관람료를 지불하고 볼 만한 수준이 나왔을까요. 궁금하시죠. 저도 너무 궁금해서 시사회날 달려가서 봤습니다. 관객 눈높이로요. 그랬더니. 두둥.
먼저, 24일 개봉하는 ‘나야, 문희’. 지난 11일에 시사회를 했습니다. 영화사 홍보 문구를 먼저 보실까요. ‘세계 최초!! 스타 배우가 무한 등장하는 100% AI 영화 개봉!! 100% AI 나문희로 만든 영화!’ 홍보 문구에서 보듯, ‘나야, 문희’는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정식으로 계약해서 만든 최초의 AI 영화입니다. 보통 영화 찍듯 카메라로 촬영하거나 나문희 배우가 연기한 장면은 하나도 없어요. 전부 AI 기술로 만든 인물에 나문희 배우 얼굴을 붙이고 목소리도 만들어 입혔습니다. 제작사에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간 기술로 완성된 영화”라고 소개하는데요, 즉, 이 영화가 보여주는 기술이 현 시점 최고이고, 이 영화 이상은 없다는 거죠. 절로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실제로 보니 어땠느냐 하면.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것이 최선이라니. 특히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관객이 일부러 영화관을 찾아가서 관람료를 내고 볼 만한 수준'의 눈높이로 봤을 때 크게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인물이 말하는 대사와 입술 모양부터가 하나도 안 맞아요. 서로 따로 놀고요. 얼굴은 나문희 같기는 한데 표정을 지을수록 어색하고, 목소리는 나문희와 아예 다르고요. 얼굴 주름은 쭈글거리기는 한데 맨질맨질합니다. 그 이질감이라니. 인물의 동작은 마치 0.7배속으로 느리게 돌리다가 갑자기 1.75배속으로 순식간에 빨리 감은 것처럼 부자연스럽고요. 저는 이 영화 관람 전엔 ‘기술력이야 둘째치고 스토리가 될까’ 싶었는데요, 실제로 보니 스토리는 둘째치고 기술력부터가 정식 장편 영화를 만들기에는 아직 수준이 한참 떨어졌습니다. ‘나야, 문희’의 경우엔 제작진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실제 배우와 바로 비교가 바로 되다보니 기술력의 한계가 더 두드러져 보인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아, 내용도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나야, 문희’는 5명의 감독이 만든 단편 5편을 연달아 보여줍니다. 5편 합한 상영 시간이 17분28초. 1편당 3분 가량인 초단편입니다. CIA요원에 쫓기거나 산타로 변신하거나 커피숍에서 청년과 티격태격하는 다양한 일화를 보여줍니다. 기승전결 줄거리에 힘을 주기보단 짧게 치고 빠지는 엽편소설 같은데요, 현재 기술력으로 어떤 장면이 구현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정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날카로운 독자님께서 “그렇게 짧은데 관람료가 얼마야” 질문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 하네요. 3000원입니다. 장편 영화에 비해 싼 건 아니죠.)
이 영화의 핵심은 초상권 사용을 허락한 나문희 배우의 결단이 아닐까 합니다. 배우는 디지털 초상권 사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나문희 배우는 “새로운 도전과 기술적 발전에 흥미를 느꼈다”며 “체력에 한계가 있다보니 이렇게 AI 영화를 통해 날개를 다는 것 같아 정말 좋았다”고 하셨다네요. 올해 여든셋 배우께서 가장 앞서가는 기술에 흔쾌히 마음을 여셨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배우가 나오지 않는 AI 영화의 수준은 어떨까요. 그걸 확인할 수 있는 AI 영화가 ‘엠호텔’입니다. 스토리 개발부터 제작 실무까지 CJ ENM의 AI사업추진팀 전문가 4명이 한 달 만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진짜 빠르긴 하네요. 표정과 동작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위해 AI 솔루션을 10가지 이상 썼다고 합니다. ‘엠호텔’은 마침 ‘나야, 문희’의 시사회날인 11일에 개봉했습니다. 11일 오전에 ‘나야, 문희’를 보고 같은날 오후에 바로 ‘엠호텔’을 봤는데요, ‘엠호텔’은 시사회를 안 해서 좀 의아했어요. 왜냐면 스펙이 정말 화려한 AI 영화거든요. 부산국제인공지능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 뉴욕AMT필름페스티벌에선 AI 경쟁부문 최우수상, 칸월드필름페스티벌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보도자료에 소개돼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의 AI 기술을 구현한 점을 인정받았다는 건데요, 그러면 어땠느냐.
역시 실망스러웠습니다. ‘나야, 문희’와 마찬가지로 제작진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AI 기술의 명백한 한계 탓이겠죠. 실제 배우가 나오지 않아서 ‘나야 문희’보다는 덜 어색했지만 하필 여기도 주인공 노숙자가 노인이라서 AI 특유의 번들거리는 주름을 계속 보다보니 이질감이 뒤로 갈수록 강해지더군요. 상영 시간은 6분31초, ‘나야, 문희’보다는 이야기를 좀 더 끌고 갑니다. 환타지고요, 한 노숙자가 우연히 주운 열쇠로 미지의 호텔에 투숙하면서 벌어지는 신비한 체험이 주가 됩니다. 6분 길이를 채울 등장 인물 개발이 완전하지 않아서 어느 게임에서 그대로 갖다붙여 놓은 듯한 캐릭터도 나오고요, 그래서인지 영화라기보다는 모바일 게임 화면을 오래 쳐다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관람료는 1000원. ‘엠호텔’ 역시 개봉작으론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나 합니다.
AI 영화 얘기 나온 김에, 제가 이전 레터에서 영화 ‘파일럿’ 얘기하면서 챗GPT 유료 버전 써본 얘길 드렸는데요(저는 요즘엔 클로드를 주로 씁니다. 챗GPT 거짓말에 질려서요. 클로드는 거짓말은 안 하더군요. 모르면 모른다고 이실직고), 오픈AI가 이달 출시한 AI 동영상 생성 모델 ‘소라 터보’가 있더라고요. ‘몇 마디 말로 척척 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준다’는 기사도 나오길래 ‘오, 이거면 당장 나도 영화 비슷한 걸 만들 수 있나’ 싶어 써보려 했죠. 그런데 실사용자 후기를 보니 ‘누구나 손쉽게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오픈AI의 소개는 많이 과장된 듯 합니다. 원하는 걸 시키면 최대 20초 길이 동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준다는데 그 짧은 길이마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하니까요. ‘소라 터보’는 제가 직접 써본 것은 아니고 제가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실사용기를 본 것인데요, 아래 링크를 붙여두겠으니 궁금하시면 함 보세요. (부산의 의사분인데 책 소개가 좋아서 구독하다가 테크 영상도 보게 됐어요. 혹시 이메일이 아니라 저희 조선닷컴이나 포털에서 레터를 읽고 계신다면 외부 링크가 작동하지 않을텐데, https://youtu.be/PcT2qkTjbpc?si=agG-zvazptlsmonf 이 링크를 복사해서 들어가보세요.)
물론 AI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고, 어느 순간엔가 퀀텀 점프를 이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이 당장 내일이나 담달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늘 이 시점에선 부족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아직은요. 그래도 계속 시도하고 만들어가면서 가능성의 영역을 계속 넓혀나가야 미래가 있겠지요. 저는 그런 미래가 올 때까지, ‘그 영화 어때’ 구독자 여러분께 부지런히 레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