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구르고, 잠시 멈추고, 다시 움직인다. 시장과 광장, 평원과 대양(大洋)과 우주로 나아간다. 사람들의 말 속에 들어 있고, 뿌리와 내일의 새잎, 발톱과 단단한 근육에 깃들어 있다가 시의 바퀴는 구동한다. 시는 모든 곳에 있고, 도달하지 못할 곳 또한 없다. 시인은 이 시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때로는 붙들어 앉히느라 매 순간 아픈 사투를 벌인다. 우리가 시를 읽으며 기대하는 것은 솟구치는 힘과 고요한 정려(精慮)가 교차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그러나 시는 헤쳐가며 구르는 것이어서 기저가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기저는 관계의 접면(接面)이라고 할 수 있고, 기저로 인해 시적 비전이 제시될 수 있다.

본심에 올라온 열한 분의 작품을 세심하게 읽었고, 최종적으로 숙의한 작품은 「주머니 자라기」, 「중력」, 「아름다운 눈사람」이었다. 「주머니 자라기」는 ‘나’를 구성하는 것의 내용을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상술했다. 시적 화자가 키우고, 모으는 것의 목록을 제시했다. 그것들은 대체로 불완전한, 멀쩡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이 구성물들이 내포하거나 환기하는 것이 다소 모호했다. 「중력」은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 시였다. 시행 곳곳에 묻어둔, 곧 터질 굉음은 마치 묵시록적 느낌을 무겁게 줬고, 현실에서 끄집어낸 시의 언어는 매우 힘이 있었다. 아쉬운 점은 공간의 이동이 눈에 띄게 계획되고 짜여 있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눈사람」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이 시는 풍요로운 서정이 돋보였다. 시의 보행(步行)이 차분하면서도 감각의 사용이 단순하지 않았다. 하얀 눈과 둥글고 큰 눈사람이 상징하는 것은 순백과 순수의 세계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의 매력은 운동장에, 즉 교실 바깥에 펼쳐져 있거나 세워져 있는 그 세계가 다가올 미래의 시간에 곧 짓밟히고, 녹아내려 울상을 보이며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암담한 예감에 있었다. 어떤 막막함과 뭉클한 슬픔이 길게 여운으로 남는 시였다. 미성(美聲)을 잃지 않고, 시심을 잘 지니고 키워서 우리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계속 불어넣어 주길 고대한다. 당선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