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혼자일 수 있었고, 완전한 한 사람일 수 있었어요. 그 순간에 느낀 따듯한 환희가 저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은 것 같습니다.” 올해 최연소이자, 지난 50년간 시 부문 최연소 당선자인 이수빈(21)씨가 “처음 시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나눴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몰래 김행숙 시인의 시집 ‘이별의 능력’을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23일 서울 세종대로 조선일보사에서 열렸다. 이씨를 비롯해 단편소설 차영은(41), 희곡 송희지(23), 동화 김은희(56), 시조 한승남(57), 동시 김지나(29), 문학평론 김웅기(30), 미술평론 박시영(37)씨가 각각 상패와 고료를 받았다. 심사위원 정끝별·유희경 시인(시), 최수철·조경란·서이제 소설가, 박인성 문학평론가(단편소설), 황선미 동화 작가(동화), 정수자 시조시인(시조), 이준관 아동문학가(동시), 우찬제 문학비평가(문학평론), 이선영 미술평론가(미술평론) 등이 참석해 축하를 나눴다.

물밀듯 밀려온 당선의 기쁨이 썰물처럼 빠져 막막함이 앞서는 시기. 당선자들은 비장한 다짐을 했다. 김지나씨는 “저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데 (당선) 전화를 받은 그날 이후부터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글을 멋지게 써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다”며 “‘다시 처음부터’라는 이름의 문이 열린 것 같다”고 했다. 한승남씨는 “제 시조는 꾹 눌러 쓴 펜글씨처럼 단단하고, 때론 힘든 한숨처럼 무겁게 뭉쳐질 것”이라며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담겠다”고 했다. 김은희씨는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이제야 ‘인생은 살 만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죽는 날까지 동화를 쓰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했다.

새싹 문인들은 ‘문학함’의 의미를 고민했다. 2019년 등단한 기성 시인 송희지씨는 올해 극작가로 데뷔했다. 당선작은 지난해 대학 마지막 학기에 ‘극 창작 수업’을 듣고 쓴 희곡. 그는 “한 갈래의 문학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장르가 가진 각자의 특성과 문법, 언어로 된 귀중한 실들을 엮어 하나의 큰 망(網)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차영은씨는 “소설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며 “나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물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낯선 태도와 시각이 들어 있는 글을 읽다 보면 재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재미가 있으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비록 필수재까지는 아니라도 말입니다.” 문학평론으로 등단한 김웅기씨는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문학으로서, 문학만으로서 일구어낸 경이로운 수고로움을 헤아릴 기회가 드디어 제게 온 것”이라며 “문학은 누구에게나 할 말 많게 만드는 존재”라고 했다.

사과를 겸해 재치 있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박시영씨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오는 대사를 소개했다. “팔자 센 여자가 나오는데, 그 여자한테 프러포즈하는 남자 대사가 ‘나한테 똥 싸요’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팔자 센 여자가 ‘팔자도 옮는다. 도망치라’고 하니까 남자가 ‘나는 타고난 상팔자니까 내 인생에 똥 싸라’고….” 박씨는 “제가 지금까지 참 많은 사람들에게 똥을 싸고 살았다. 앞으로는 상호 간에 똥 싸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쑥쑥 크도록 하겠다”고 했다.

최수철 소설가가 심사위원 대표로 격려사를 건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비탈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지와 다르지요. 평지에 서는 것은 평범하게, 편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비탈에 서는 것은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지요.” 최 소설가는 “힘을 내셔서 비탈에 깊이 뿌리를 박아달라”며 “울창하게 자라서 주변에 비탈에 서려는 분들도 도와주시고, 그분들과 더불어 공동 연대를 이루어서 우리 사회를 더 의미심장하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관문을 통과했으니 그 언어가 여러분들을 더 강건하게 해서 앞으로의 삶을 더 충만하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23일 오후 서울 세종대롤 조선일보사에서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열렸다. 당선자 8명과 심사위원들. /장련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