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LG그룹과 GS그룹이 계열 분리한 지 20년 되는 해다. GS그룹은 지난 2005년 1월 공정위의 승인을 거쳐서 3월 말 공식 출범했다. 최근 두 대기업이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조우(遭遇)하게 됐다. 문화 예술 분야의 전문 공연장을 각각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2000년 3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개관한 옛 LG아트센터가 2022년 3월 문을 닫으면서 ‘공연장의 계열 분리’가 시작됐다. LG그룹에 속하는 LG아트센터는 강서구 마곡동으로 옮겨서 2022년 10월 문을 열었다. 당초 서울 서남권 공연 시장 개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개관 이후 66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빠르게 안착했다. 역삼동 시절 22년간 축적된 탄탄한 기획력과,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은 화제성, 마곡 LG사이언스파크의 든든한 입지라는 세 가지 요인이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번에는 GS아트센터가 4월 24일 역삼동의 옛 LG아트센터 자리에서 개관한다. 개관을 두 달여 앞둔 10일, 올 시즌 일정 소개와 함께 공연장 사전 공개 행사를 열었다. 미국 정상급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4월 24~27일 개관 페스티벌의 문을 연다. 한국 무용수 서희·안주원·박선미·한성우를 비롯해 총 105명이 내한해서 ABT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시각 예술가이자 연출가인 윌리엄 켄트리지(69)와 스페인의 현대무용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43)의 내한 무대도 4~5월 이어진다.
옛 LG아트센터의 명칭과 인력은 마곡의 LG아트센터에서 흡수하고, 입지와 건물은 역삼동의 GS아트센터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셈이다. 리모델링 공사비 320억원을 들인 GS아트센터는 객석이 1103석에서 1211석으로 약간 늘었을 뿐, 내부 골격은 옛 공연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금호아트홀과 국립 심포니 출신의 공연 행정가인 박선희 GS문화재단 대표는 “역삼동 시절의 유산을 이어받고자 하는 뜻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LG아트센터와 GS아트센터는 서울 서남권과 강남권이라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당장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연극·뮤지컬·발레·현대무용 등 장르적으로는 관객층이 겹칠 가능성도 있다. 공연 분야 ‘두 지붕 두 가족’의 탄생이다.
GS아트센터는 이날 국립발레단·서울재즈페스티벌 등 다양한 단체와 ‘협업’하는 프로그램도 공개했다. 5월 20일에는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 23~25일에는 재즈 기타 명인 팻 메스니의 내한 공연을 서울재즈페스티벌과 공동 주최한다. 6월 26~29일에는 국립발레단과 함께 ‘킬리안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박선희 대표는 “연극·무용·미디어아트까지 기존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 개념을 확장하는 다양한 공연을 소개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