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미배(74)의 목소리는 따스하다. 여성 보컬로는 드문 중저음 음색이 숨겨진 내밀한 슬픔을 건드려 깊은 위로를 준다. 1979년 1집 ‘뱃사공’으로 데뷔한 그는 1983년 2집 타이틀곡이자 샹송 스타일 노래 ‘당신은 안개였나요’로 전성기를 누렸다. 국내에선 드물던 샹송·칸초네 전문 가수로 각인됐고, ‘한국의 에디트 피아프’란 말도 들었다.
최근 만난 이미배는 “데뷔 때는 시 한 수, 샹송 하나쯤 외우고 다니는 게 멋쟁이의 필수였다. 그런 시대상과 맞물려 더 주목받은 것 같다”고 했다. 3월 29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칸초네 ‘시노 메 모로’와 ‘볼라레’, 샹송 ‘눈이 내리네’와 ‘장밋빛 인생’ 등 20여 곡을 선보인다.
이미배는 1971년 TBC(동양방송) 주최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에서 칸초네 ‘리카르도’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가요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럼에도 정식 데뷔까진 8년이 더 걸렸다. “여가수는 처우가 열악하다”는 부모의 반대, 그리고 23세 나이에 펜팔로 만난 남편과의 이른 결혼 때문이었다. “남편은 당시 결핵으로 요양원에 있었고, 얼굴 본 게 세 번 정도뿐인 사이였죠. 부모님 반대가 당연히 거셌지만, 가출까지 불사했어요. 결혼 후엔 아이를 낳아 살림과 육아에 전념했고요.” 경기여고, 연세대 가정대학 출신 ‘엘리트 가수’란 수식어가 붙었다. 세상 풍파 모르는 고상한 여자란 편견도 있었다.
이미배는 그러나 “결혼이 인생도 목소리의 깊이도 바꿔 놓았다”고 했다. “시댁은 다소 가부장적이었고, 하루 손빨래를 세 번씩 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니 친정에 하소연도 못 하고, 이러려고 내가 공부를 한 게 아닌데란 고민도 컸죠.”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던 어느 날 “문득 이제야 내가 노래를 더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가요계로 돌아온 이유였다. “힘들었지만 다시 돌아가도 결혼을 택할 거예요. 8남매 중 다섯째로 자라 사랑을 받기만 했던 제가 아이들 덕분에 사랑을 주는 법을 배웠고, 사랑 노래에 대한 해석을 깊이 더하게 됐죠.”
이미배의 목소리는 그렇게 무르익어 1998년 7집 ‘욕망’ 때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라비앙 로즈)’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담담하게 툭, 가슴속 응어리를 터뜨리는 듯한 농도 짙은 음색에 “피아프 노래를 맛깔나게 부른 음반”이란 호평이 이어졌다. 이미배는 “피아프의 목소리가 절절한 감동을 주는 건 그가 과거 거리의 악사로 방황하고, 연인을 잃어 본 아픔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평탄하게 살아선 그처럼 감동과 위로를 주는 노래는 못 부를 거예요. 피아프만큼 절절하게 부르진 못해도, 다채로운 음색을 우리 가요계에 더하는 가수란 평을 듣는다면 기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