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쓰다가는 죽는다’고 누가 그러셨는데요…. 그런데 쓰고 싶은 것들이 계속 생각나서, 계속 쓰고 있어요.”
소설가 김숨(51)이 조용조용 말했다. 한국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다작가(多作家)다. 1997년 등단해 2005년 첫 소설집 ‘투견’을 펴내고 해마다 최소 한 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 책을 내지 않은 해는 2012년과 2022년 딱 두 해뿐이다. 다작가에게는 작품성 논란이 일기 마련. 그러나 김숨은 이를 비켜 간다. 대신 새 지평을 열어 보인다.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이유가 있다. 이달 초 연작소설 ‘무지개 눈’을 펴낸 그를 12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났다.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을 인터뷰해 썼다. ‘무지개 눈’은 그중 한 화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햇빛이 사선으로 비치는 순간을 표현한 조어(造語)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을 갖고 4~5년 전쯤 맹학교를 찾아간 것이 시작이었다. 선천성 저시력증에서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全盲)이 된 특수교사 이진석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소설가는 “너무나 다양한 시각장애인이 존재했고, 각각의 불편이 달랐다”고 했다. 이후 선천성 전맹인 전주연씨, 선천성 전맹이자 지체장애인 최다원씨, 선천성 전맹이며 안마사로 일하는 김희정씨, 선천성 저시력인 김준협씨를 만났다. “그분들의 목소리가 저에게 와요. 그러면 제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만들어져요.”
김숨은 낯선 감각으로 세계를 빚는다. 듣는 것이 곧 보는 것이다. 색(色)은 외우거나, 잊는 것 또는 상상하는 것이다. 내가 입은 옷의 색은 누군가 일러주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다. 소설은 보이는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제한한다. ‘색깔이 없는 예쁜 원피스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의 색을 입는다’ 같은 문장이 그 예다. ‘어디까지가 나인가요? 어디서부터가 나인가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이는 거울 앞에서 이렇게 묻는다. 소설은 시(詩)였다가, 희곡이었다가, 어느샌가 독백이다. 시점이 흐트러지는 대신 시각, 즉 얼마만큼 보이는지가 서술자의 위치를 새로이 만든다. 볼드체와 기울임체가 수시로 끼어들고, 점자도 찍는다. “쓰고 싶은 대로 쓰자. 희곡의 형식이 제게 오면 그렇게 쓰자, 했어요. 점자가 아름답다는 것도 봤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987년 6월 항쟁 운동가와 목격자, 극동 러시아의 조선인 강제 이주사 등. 그간 김숨은 ‘역사와 개인’, ‘증언과 기록’의 문제를 깊이 고민해왔다. 인터뷰이에게 질문하는 대신 일상을 나눈다. 그러다 보면 “아주 깊은 얘기가 흘러나온다”고 했다. 녹음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안에서 생겨나는 문장을 받아 적어요. 거기서 목소리가 생겨날 때, 제가 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감각은 2020년 ‘떠도는 땅’(동인문학상 수상작) 때부터 본격화했다. 소설가에게도 중요한 분기점이다.
김숨은 “소설가는 나이 드는 것이 축복인 것 같다”고 했다. “너무나 많은 경험이 제 안에 쌓이잖아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타인의 우여곡절을 온전히 이해하게 돼요. 남의 이야기를 쓰는데,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쓰게 돼요.”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남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는 그 추체험이 더욱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