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만 모인 채화여고의 전교 1등 유제이(이혜리·왼쪽)는 담배를 피우고 클럽에 드나드는 등 일탈을 서슴지 않는다. 19금 드라마 ‘선의의 경쟁’엔 마약·동성 키스 등 기존 학원물에서 찾아볼 수 없던 파격적인 장면이 담겼다. /U+모바일tv

이곳은 학교인가, 범죄 소굴인가. 티빙 드라마 ‘스터디그룹’은 내신 성적을 노리고 ‘똥통’ 공고에 진학한 윤가민(황민현)의 학원 액션물이다. 학교 곳곳에 둔 드럼통엔 담배꽁초가 가득하고, 쉬는 시간마다 격투가 벌어지며 싸움을 말리려는 선생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른다. 이 와중에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주인공이 불량배를 제압하는 모습은 어이없게 웃기지만, 무법 지대가 된 학교를 보는 뒷맛은 씁쓸하다.

요즘 OTT에선 치열한 ‘19금’ 드라마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K콘텐츠 분석 플랫폼 펀덱스에 따르면 2월 1주 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톱 10 중 ‘원경’ ‘오징어 게임2’ ‘뉴토피아’ ‘스터디그룹’ ‘선의의 경쟁’까지 절반이 청소년 관람 불가 드라마였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티빙은 ‘우씨왕후’부터 시작해 ‘원경’‘춘화연애담’까지 19금 사극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원경’은 태종 이방원의 부인 원경왕후를 재조명한 드라마로 tvN에서 방영되는 15세 버전과, 티빙에서 공개되는 19세 버전을 따로 공개했다. 수위 높은 노출 장면에서 대역 배우의 나체에 주연 배우의 얼굴을 CG로 합성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도 일었다. 고아라 주연의 ‘춘화연애담’ 역시 공개 전부터 작품보다는 여배우의 노출 수위에 관심이 쏠렸다.

티빙의 ‘스터디그룹’과 U+ 모바일 TV ‘선의의 경쟁’은 교복 입은 학생이 주인공인 학원물이지만 19금 딱지가 붙었다. 청소년은 못 보는 청소년 드라마인 셈. 배경만 학교일 뿐, 폭력과 마약이 판치는 잔혹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선의의 경쟁’은 살벌한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상위 1% 여고가 배경.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고, 전교 1등이 담배를 피우고 클럽을 드나드는 등 청소년에게 해로운 내용으로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다. 김태희 감독은 “애초에 기획할 때부터 10대를 타깃으로 하진 않았다. 입시 경쟁을 겪은 모든 어른이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경쟁이 치열해진 드라마 시장에서 눈길을 끌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면서 “시청이 제한돼 있지만 10대도 마음만 먹으면 우회해서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청소년에게 위험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쿠팡플레이 ‘뉴토피아’는 좀비의 신체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쏟아지는 피범벅 ‘고어물’로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다. /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뉴토피아’는 좀비와 로맨틱 코미디를 결합했다. 서울 강남대로 한복판이 좀비 떼로 뒤덮이고, 고층 빌딩의 방공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 재윤(박정민)과 여자 친구 영주(지수)가 서로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기상천외하게 신체가 훼손된 좀비들이 등장하는 고어물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B급 코미디와 로맨스를 끼얹어서 잔혹함을 중화했다.

OTT가 19금 드라마에 목을 매는 것은 그만큼 화제가 되기 때문. ‘원경’은 높은 수위의 베드신으로 화제가 되며 공개 직후 주간 유료 가입 기여자 수 1위, 주간 시청 UV(순 이용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선의의 경쟁’도 역대 U+모바일tv 오리지널 드라마 중 시청자 수, 신규 시청자 수 1위에 올랐다.

‘매운맛’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시청자도 피로를 느끼고 있다. 해외에서도 “K드라마는 자극적”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 ‘마음에 든다’고 답한 비율은 68.8%로 3.7%p 하락한 반면, 부정적 인식에 공감한 응답자는 32.6%로 5.5%p 증가했다. 이유는 “지나치게 자극적·선정적’(24.9%), ‘획일적이고 식상함’(22.0%), ‘지나치게 상업적’(21.1%) 등이 나왔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19금 드라마는 선정적·폭력적이라는 선입견을 깨야 한다. 본격 정치물 등 성인을 위한 콘텐츠도 다양해질 수 있다”면서 “자극적인 소재로만 승부하려는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밀려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