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 ‘종이잡지클럽’에서 인터뷰를 가진 김민성(왼쪽)·이석씨.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고운호 기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땐 트렌드를 모아놓은 잡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서점에서 읽고 싶지만, 대부분 비닐로 포장된 탓에 표지 모델만 구경하고 돌아오기 일쑤다. 도서관은 신간 잡지를 망라한 곳이 드물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종이잡지클럽’은 말 그대로 종이로 된 잡지를 읽고 구입할 수 있는 잡지 전문 서점이다. 6000원을 내면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무제한 새 잡지를 읽을 수 있다. 김민성(38) 대표와 창업자인 이석(52) 이사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가격을 넘지 않도록, 저렴한 값에 잡지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종이잡지클럽은 음악 잡지 ‘매거진 비지엠(BGM)’, 영화 잡지 ‘프리즘 오브(prism of)’ 그리고 철학·인문학 잡지까지 국내 잡지 1050종과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 9국의 해외 잡지 450종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 잡지 중에선 일본 패션지 ‘뽀빠이(POPEYE)’, 영국 라이프스타일 잡지 ‘모노클(MONOCLE)’ 등이 특히 인기가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손님들이 잡지를 꼭 구입하지 않아도 다양한 잡지를 보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굿즈나 음료를 파는 북카페형 독립 서점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종이잡지클럽은 그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오롯이 잡지에만 집중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간제 회원제도 운영한다. 3개월 3만원, 6개월 4만5000원 회비를 내고 오프라인 회원으로 가입하면 해당 기간 동안 서점에 비치 중인 잡지 1500여 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 7만5000원을 내고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한 이들은 1년에 세 번씩 서점에서 선정한 ‘이달의 잡지’를 받아볼 수 있다. 현재 회원 수는 온·오프라인을 합쳐 380여 명. 2018년 10월 창립 이래 누적 회원은 약 3700여 명이다. 2022년 8월엔 제주도에 400종 잡지를 비치한 2호점도 냈다. 2호점에선 여행지라는 제주도 특색에 맞게 음식과 음료를 다루는 ‘매거진 F’, 식문화를 깊이 있게 소개하는 ‘부엌 매거진’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온라인 회원에게 보내는 ‘이달의 잡지’ 외엔 손님들에게 특별히 잡지를 추천하며 읽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잡지 특성상 큐레이션을 해서 회원들의 생각을 제한하고 싶지 않아요. 수많은 잡지 속에서 한번 ‘헤매는 것’을 독려합니다.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서점에서 매월 진행하는 ‘진(Zine) 만들기 워크숍’에서 회원들이 만든 잡지 5종./김광진 기자

대신 단순히 잡지를 읽는 공간을 넘어 독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합정점에서는 매달 회원 20여 명이 참여하는 ‘진(zine) 만들기 워크숍’을 연다. 회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이용해 자신만의 잡지를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제주점에서는 한 달에 두 번, 아침 7시에 잡지를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고요한 아침의 독서 클럽’도 진행 중이다. 이 이사는 “잡지는 단순히 읽고 끝나는 매체가 아니라, 사람들 간 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며 “우리 서점이 독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어릴 적 아버지가 정기 구독을 신청해 준 ‘소년 챔프’로 잡지에 처음 입문했다. 스스로를 “본투비 매거진 키즈(타고난 잡지광)”라고 소개했다. 대학생 때는 ‘샘이깊은물’과 ‘녹색평론’ 등의 잡지에 흠뻑 빠졌다. 10여 년간 일간지 기자로 일했고, 이후엔 판교 IT 기업에서 임원을 지냈다.

2018년 10월 ‘그토록 좋아했던 잡지로 서점을 만들어보자’ 결심했고, 평소 자주 가던 책방 매니저였던 김 대표와 함께 ‘종이잡지클럽’을 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책을 읽는 경험과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점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 공간이 되는 것”. “서울에서 활동하던 회원들이 지방으로 내려갔을 때 서울 같은 공간이 없어 아쉬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제주도 2호점을 시작으로 각 지방에서 작은 형태로라도 잡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하나의 브랜드로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김민성) “서점이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문화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이석)

[종이잡지클럽의 PICK!] 초심자를 위한 종이 잡지 3종

모노크로매터(MONOCHROMATOR)=국내 잡지사 프리즘오브 프레스의 글로벌 매거진. 매호 선정하는 영화 둘을 분석해 정치·사회적 담론과 연관 짓는 영화 잡지. 기성 잡지에서 보기 어려운 담론과 평론을 거침없이 풀어낸다.

비지엠(BGM) 매거진=그룹 가수 ‘스탠딩 에그’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개념의 음악 잡지. 매 호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그 주제에 맞는 재생 목록을 소개한다.

잡스(Jobs)=매거진 B의 잡지. 하나의 직업을 골라 해당 직업군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인터뷰를 담은 잡지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직업 속에 녹아있는 기쁨과 슬픔을 주로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