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김동전 넷플릭스에서 데려간 거야?” “넷플릭스, 홍김동전 입양해줘서 감사합니다.”

'도라이버'에서 '오징어 게임'의 영희 분장을 한 홍진경. /넷플릭스

넷플릭스 예능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의 예고편에 달린 댓글들이다. 지난달 말 공개된 ‘도라이버’는 지난해 폐지된 KBS 예능 ‘홍김동전’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다시 뭉친 프로그램이다. 김숙·홍진경 등 5명의 출연진이 매주 다른 게임을 수행하며 원초적인 웃음을 주는 올드 스쿨(구세대) 예능. TV 시청률은 1%대에 그쳤지만, OTT와 소셜미디어에선 “제2의 무한도전”으로 젊은 층의 호평을 받았다. 사실상 제목만 바꿔 넷플릭스로 복귀하자 온라인에서는 “KBS가 버린 예능을 넷플릭스가 입양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넷플릭스가 이젠 TV 예능까지 삼켰다. 주 5일 예능을 편성하고, 지난 22일부터 예능 신작 5편을 차례로 선보였다. 시즌제로 한꺼번에 몰아볼 수 있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과 달리, TV 예능처럼 1년 동안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된다.

매주 수요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예능 ‘추라이 추라이’에선 격투기 선수 추성훈(가운데)이 토크쇼 MC로 데뷔했다. 2화에선 보조 MC 이창호(왼쪽), 게스트 신성록과 함께 뮤지컬에 도전했다. /넷플릭스

매주 월요일엔 데프콘의 동호회 체험기 ‘동미새: 동호회에 미친 새내기’, 수요일엔 추성훈이 토크쇼 MC로 데뷔한 ‘추라이 추라이’, 목요일엔 가수 성시경과 ‘고독한 미식가’ 주연 마쓰시게 유타카의 한·일 미식 탐험기 ‘미친 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 토요일엔 최강록 셰프와 유튜버 문상훈의 요리 토크쇼 ‘주관식당’, 일요일엔 “구개념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도라이버’가 편성됐다.

제작 기간이 1년 이상 걸리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과 달리 일일 예능은 매주 30분 내외의 콘텐츠를 가볍게 선보인다. 제작비도 TV 예능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적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급변하는 시청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는 주간 예능으로 다양한 취향의 시청자를 만족시키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KBS에서 종영한 지 1년 만에 돌아온 ‘도라이버’. 지난해 팬클럽이 KBS 앞에서 폐지 반대 시위를 펼칠 정도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넷플릭스

가장 화제가 된 건 일요 예능 ‘도라이버’다. KBS에선 1%대 시청률로 종영했지만, 넷플릭스에선 공개 직후 인기 차트 1위까지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도라이버’의 박인석 PD는 “KBS 퇴사 후 넷플릭스에 8회짜리 시즌제 예능 기획안을 제출했는데, ‘일일 예능’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진행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회당 분량이 70~80분에서 20~30분으로 줄면서 제작 인원도 훨씬 줄었다. 박 PD는 “비교적 젊고 유연한 플랫폼으로 왔기 때문에 출연진이 좀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실험은 구독자 이탈을 막고, 체류 시간을 늘리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고 본격적으로 광고 시장에 뛰어든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콘텐츠 시청 시간이 늘수록 광고 매출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넷플릭스의 광고 요금제 가입자 수는 전 분기 대비 30% 증가했고, 신규 가입자의 55% 이상이 광고 요금제를 선택했다.

블록버스터급 예능을 선보여왔던 넷플릭스가 틈새 시장까지 파고들면서 방송국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일일 예능의 제작진은 대부분 KBS·MBC·tvN 등 주요 방송국 출신이다. ‘주관식당’은 김태호 전 MBC PD가 설립한 제작사 TEO에서, ‘미친 맛집’은 tvN 출신 PD들이 모여 세운 제작사 스튜디오 모닥에서 만들었다. ‘동미새’는 JTBC 출신으로 ‘솔로지옥’을 성공시킨 김재원 PD와 박수지 PD가 기획과 연출을 맡았다.

그러나 공개된 신작 예능의 면면을 보면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방송사가 아닌 유튜브로 보인다. 문상훈·성시경·추성훈 등 유튜브 구독자가 많은 스타를 캐스팅했고, 기존에 유튜브 예능을 가리키는 수식어였던 ‘밥 친구 예능(밥 먹으면서 보기 좋은 예능)’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 방송국의 예능 PD는 “OTT 침투로 인한 방송의 위기는 이미 만성화됐고, TV와 OTT의 시청층도 거의 분리됐기 때문에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진 않는다”면서 “오히려 제작사 입장에선 투자받을 기회가 늘어나니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다만 “넷플릭스 드라마로 인해 제작비와 출연료가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듯이, 예능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