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필동 스페인책방 책방지기 천민경씨가 여행 모자를 쓰고 스페인 국기를 들고 있다. 스페인 관련 책 1000여 종이 있는 이 책방은 매월 150~200권씩 스페인 현지에서 직접 책을 수입한다. /박성원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9598km, 비행기로 14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에 스페인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서점이 있다. 국내에서 ‘스페인에 대해 조금 안다’ 자부하는 이들에겐 성지 같은 곳. 지난달 28일 서울 필동 ‘스페인책방’에서 책방지기 천민경(41)씨를 만났다. “올라(Hola), ‘도심 속 작은 스페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올라’는 스페인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

책방은 국내외 스페인 관련 책 10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 현지 출판사와 직접 거래하며 매월 150~200권을 수입한다고 했다. 2018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땐 7평(약 23㎡) 남짓한 공간에 매달 50명도 손님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점차 책방의 독특함이 소문 나고, 스페인의 정취가 묻어나는 문화 행사를 개최하면서 7년 만에 공간을 두 배로 늘리고 매월 500여 명이 방문하는 서점으로 성장했다. 천씨는 “처음에는 스페인과 중남미 관련 책만 들였지만, 책방이 커지면서 일반 책도 들여왔다. 지금은 원서 수입 비율을 높이며 스페인과 중남미 문화에 대한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고 했다.

책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딸구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라는 뜻으로, 그림을 전공한 여행 작가 박수현씨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한 후 건물과 관광지 등 풍경을 정교한 일러스트로 옮긴 책이다. 그림을 여러 장 이어 붙여 접어놓았다 펼쳐 보며 읽게 만든 아코디언 북.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카미노 포르투게스’와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카미노 프랑세스’ 두 버전이 합쳐서 총 200여 권 팔렸다.

이 밖에 한국인 작가가 2년 동안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쓴 에세이 ‘바르셀로나, 지금이 좋아’, 각종 스페인 음식 조리법과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담은 스페인 책 ‘TAPAS(타파스)’가 총 100여 권씩 팔렸다.

책방 선반에 진열돼 있는 스페인 원서들. /박성원 기자

스페인과 관련된 문화 행사도 진행한다. 책방 설립일인 매년 7월 28일에는 소금에 절여 말린 돼지 다리로 만든 스페인 전통 햄 ‘하몽’을 스페인산 와인을 곁들여 무제한으로 즐기면서 파티를 하는 ‘하몽 무제한 파티’가 열린다.

지난해엔 ‘스페인책방 커뮤니티’를 만들어 50여 회원과 중남미 문화원 탐방, 스페인 음식을 먹으며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했다. 올해엔 이 커뮤니티를 수백 명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말부터 ‘스페인책방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책방과 스페인 관련 소식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지난해엔 스페인 카탈루냐 관광청, 주한 카탈루냐 정부 대표국과 함께 진행한 ‘산 조르디 in 서울’이라는 행사에서 카탈루냐 작가 자우메 카브레가 쓴 스페인 내전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 책 ‘나는 고백한다’(민음사)의 편집자와 함께 북토크를 열기도 했다.

스페인책방은 천민경씨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승화시킨 이른바 ‘덕업 일치’를 이룬 곳이다. 천씨는 열여섯 살이 되던 2000년, 스페인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가 설계한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관련된 책을 우연히 보고 첫눈에 반했다. 지금은 매년 한 번씩은 스페인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스페인 덕후’로 거듭났다. 2016년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며 여러 책방을 돌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책방을 접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얻어 2018년 스페인책방을 열었다.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을 처음 접하는 순간 가우디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스페인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다”고 했다. “로마·이슬람·가톨릭이 얽혀 만든 독특한 역사와 문화, 피카소 등 예술 거장들이 남긴 불멸의 작품들, 그리고 특유의 유쾌하고 열정적인 국민성과 그에 맞는 화려한 춤 플라멩코까지, 여행하면서 본 스페인의 모습도 매력적이었고 이 모든 게 책방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천씨는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동떨어진 스페인과 한국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책방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지금까지 잘해 온 것처럼 꾸준히 계속해서 재미있게 해나가려고 합니다. 스페인책방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니까요. 아! 하나 욕심이 있다면, 스페인에 한국 책을 소개하는 지점을 만들고 싶네요.”

[스페인책방의 Pick!]

스페인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지식프레임)=스페인 일부 자치주에서는 투우 경기가 금지되었고, 모든 스페인 사람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대전외고 스페인어 교사 이강혁씨가 지리, 정치, 역사, 건축 등 37가지 키워드로 스페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담았다.

●‘미식가를 위한 스페인어 안내서’(휴머니스트)=오직 먹는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스페인어와 맛있는 스페인 음식 이야기를 담았다. 10년 경력 스페인어 강사 이지가을씨가 마련한 3코스 ‘READY, SET, GO’만 따라간다면 충분히 미식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호아킨 소로야-바다, 바닷가에서’(에이치비프레스)=20세기 초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호아킨 소로야가 그린 바다 풍경을 모은 화집. 빛이 아름다운 그림들을 통해 스페인의 햇살과 풍경을 상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