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2019)의 이병헌 감독은 데뷔작 ‘스물’을 찍던 2014년 조감독 물색에 공을 들였다. 쟁쟁한 후보자를 면접하던 이 감독은 별다른 질문 없이 30대 초반의 김혜영 감독을 낙점했다. 이유를 묻는 김 감독에게 그는 “책가방 보고 뽑았다”고 답했다. 김 감독이 면접장에 메고 갔던 커다란 백팩을 두고 한 말이었다. 열면 뭐든지 나올 것 같은 묵직한 가방을 메고 들어선 김 감독의 씩씩한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었다. 첫 작품부터 통했던 두 감독은 ‘스물’에 이어 ‘바람 바람 바람’(2018), ‘극한직업’에서도 감독과 조감독으로 일했다. 이 감독의 첫 드라마 ‘멜로가 체질’(2021)에선 김 감독이 나란히 공동 연출로 나섰다.
든든한 책가방의 씩씩한 에너지는 최근 개봉한 김 감독의 데뷔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로 이어졌다. 어떠한 역경에도 긍정적인 힘을 잃지 않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괜찮아’는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청소년 심사위원단이 뽑는 제네레이션 K플러스 부문에서 최고상인 수정곰상을 받았다. 김 감독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작년 베를린 시사가 끝나고 10대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현지 관객들이 몰려들어 예정에도 없던 사인회를 했다”며 “13세 관객이 ‘내가 살면서 본 영화 중 최고였다’고 말해줘 뿌듯했다”고 말했다.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한 김 감독은 2005년 촬영 정보를 기록하는 스크립터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데뷔작 ‘괜찮아’에는 그가 20년간 현장에서 만나온 인연과 인맥의 기운이 충만하다. 화려한 배우진에서 먼저 확인된다. 주인공을 돕는 동네 약사 역에 손석구, 주인공 남자친구 역에 ‘무빙’의 이정하, 주인공의 친구이자 맞수 역에 ‘선의의 경쟁’으로 주목받는 정수빈이 나온다.
김 감독의 선구안도 한몫했다. ‘괜찮아’를 촬영하던 2021년은 세 배우가 주연급으로 뜨기 전이다. 김 감독은 “‘멜로가 체질’ 때 만난 손석구는 물끄러미 바라볼 때도 깊이가 있는 배우”라며 “10대 주인공과 장난을 치면서 감싸주기도 하는 역할에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을 승낙했다는 손석구는 크레디트에 우정출연으로 표기되고 실제 분량도 길지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극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끌어올린다. ‘극한직업’의 허명행 무술감독은 “나를 써달라”고 먼저 나섰다. 김 감독은 “허 감독은 ‘저희 영화엔 액션이 없다’고 했더니 ‘뭐라도 있을 거 아냐?’라며 무조건 돕겠다고 해서 학생들이 엉겨붙어 싸우는 장면을 봐주셨다”고 말했다.
제목에 반복된 단어 ‘괜찮아’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질문이면서, 답이고, 확신이다. “괜찮아?”라고 물어보고, 자신없이 “괜찮아..”라고 했다가 진짜로 “괜찮다!”고 힘주어 말하는 위로와 배려를 담았다. ‘괜찮아’는 관객 7만1000명(5일 현재)을 넘어서며 선전하고 있다. 김 감독은 “서로 괜찮다고 위로하고 인정하는 순간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한다는 이야기에 관객들이 많이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