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다들 거짓말을 당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거짓말하는 쪽이 승리하는 풍토가 형성돼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요즘 세태에 이런 인상을 받는다고 9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밝혔다. 그는 지난달 말 일본에서 출간한 미국 소설가 팀 오브라이언 소설 ‘아메리카 판타스티카(America Fantastica)’ 번역을 계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소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허위 사실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이에 휘둘리는 가상의 사회를 묘사하면서 미국 사회와 트럼프 정권을 비판한다. 국내에선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소설에 대해 하루키는 오브라이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허구에 국민이 끌려가는 것에 대해 강한 두려움이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정권이 하고 있는 일은 과거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가짜 뉴스를 바탕으로 이라크전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키는 “저도 오브라이언처럼 1960년대 후반 반체제 문화의 공기를 마셨던 사람으로서, 다시 사회가 점점 보수화되고 대다수가 이런 흐름을 지지한다는 데서 오는 배신감을 세대적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현실성이 없는 트럼프의 공언을 다수가 지지하는 건 디스토피아 같은 현실의 막막함 때문이지 않을까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잘되고 있다는 말, 경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싶고, 속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세상이 ‘중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도 했다. “세계화, 자유무역, 성소수자 권리, 지속 가능한 사회와 환경 문제를 위한 노력 등을 확대해 나가던 중, 갑자기 모두가 성벽을 쌓고 성 안에 갇히기 시작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세계의 중세화’라고 부른다면서 “이게 의미하는 것은 소규모 지역 전쟁”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터져 나오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역 전쟁이 추구하는 것은 중세와 마찬가지로 영토 확장밖에 없어요.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