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유서 깊은 고성인 샹보르성에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Domaine national de Chambord – Sophie Lloyd

‘빛의 화가’ 김인중(85) 신부가 프랑스의 유서 깊은 고성(古城)을 광휘의 색으로 물들인다.

프랑스 루아르 지역 샹보르성에서 29일 ‘김인중: 보이지 않는 색’이 개막한다. 김 신부가 프랑스와 독일 공방에서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40여 점이 850㎡ 규모 공간에서 5개월간 전시된다. 성에 머물며 막바지 작업 중인 김 신부는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우아하고 매력적인 샹보르성에서 전시를 연다는 건 하늘이 주신 선물이자 과분한 영광”이라며 “특히 이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계단을 설계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인간이 이룩한 예술의 위대함을 깊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중세 건축과 르네상스 양식이 어우러진 샹보르성 외관. /위키피디아

샹보르성은 고성이 즐비한 루아르 지방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성이다. 1519년 프랑수아 1세가 착공해 1658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완공했다. 중세 건축과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의 배경이 된 성으로도 유명하다. 1층부터 성의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는 이중 나선형 계단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2011년 프랑스 샤르트르 국제 스테인드글라스 센터에서 열린 김 신부의 전시를 보고 감동한 샹보르성 전 디렉터가 제안해 이뤄졌다. 샹보르성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건 처음이다. 화선지처럼 유리에 번진 주홍·노랑·초록색이 자연광이 쏟아지는 건축물과 어우러져 빛의 환희를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샹보르성 관계자는 “탑을 장식한 백합꽃 문양은 삼위일체의 상징이자, 신과 왕 간의 상징적 대화를 나타낸다”며 “김 신부의 작품과 조화롭게 만나 광휘를 드러낼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루아르 샹보르성에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설치된 모습. © Domaine national de Chambord – Sophie Lloyd

동양의 먹과 서양의 유화 기법을 독창적으로 연구해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수묵처럼 색이 번지는 화풍은 중학교 서예반에서 익힌 붓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제 60년 예술 인생을 집약한 것”이라며 “다른 예술가들을 모방하거나 특정 흐름에 따르지 않고 저만의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김 신부가 두 달간 성에 머무르며 제작한 신작 3점 중 한 점도 주요 작품으로 전시된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성인이자 샹보르성 성당의 주보성인(主保聖人·성당의 보호자)인 성 루이(Saint-Louis)를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며 “그의 지혜와 신앙이 제 작품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성 루이에게 바친다”고 했다. 도자기와 회화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샹보르성은 “그의 붓 터치가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샤보르성에서 29일 개막하는 김인중 신부 개인전 전경. © Domaine national de Chambord – Sophie Lloyd
프랑스 샤보르성에 전시된 김인중 신부 작품. © Domaine national de Chambord – Sophie Lloyd

김 신부는 유럽에서 대표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꼽힌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호주, 독일 등 세계 주요 성당과 교회, 수도원에 그의 작품을 남기며 현대 성(聖)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올해 법정 스님 입적 15주기를 맞아 5월 출간되는 추모집에는 김 신부의 수채화가 수록될 예정이다. 그는 “길상사 주지인 덕조 스님이 주관하는 추모집에 작품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종교 간 울타리를 초월하는 기쁨”이라고 했다. 샹보르성 전시는 8월 31일까지. 김 신부는 “메마른 세상에서, 많은 분이 제 작품을 통해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김인중 신부(85)

김인중 신부

1966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유학 중 사제가 됐다. 1974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부터 파리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동양화의 일필휘지를 응용한 독창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양식으로 주목받았다. 2010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훈장 ‘오피셰’를 받았다. 현재 카이스트 초빙 석좌교수로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