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음악인들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지휘다. 김은선(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 음악 감독), 첼리스트 출신의 장한나(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상임 지휘자), 성시연(뉴질랜드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수석 객원 지휘자) 같은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한 명을 추가해야 한다. 최근 한국계 여성 지휘자 최현(미국명 홀리 최·33)이 노르웨이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됐다. 이 악단은 매년 노벨 평화상 기념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현은 한국에서 태어나 열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 그는 최근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고 싶다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에 오셨다. 그 뒤에도 플로리다·텍사스·캘리포니아에서 계속 일했다”고 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건 비교적 늦은 나이인 13세 때였다. 첫 악기는 클라리넷. 그는 “부록으로 음반이 실린 교재를 보면서 매일 2~3시간씩 독학했다”고 말했다. 개인 지도는 19세 때 처음으로 받았다고 했다. 한국의 음악 영재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던 셈이다. 호랑가시나무라는 뜻의 ‘홀리(Holly)’가 그의 영어 이름이다. 그는 “미국에서 ‘현(Hyun)’이라는 발음을 힘들어해서 비슷한 말을 찾다가 성탄절 장식용으로 쓰이는 나무를 이름으로 골랐다”고 했다.
그에게 지휘의 꿈을 심어준 건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고교 마칭 밴드(Marching Band)였다. 그는 “미국에선 마칭 밴드들이 인기가 많은데 고교 시절에 고적대장 역할을 하면서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경영학·음악 교육 등을 공부하다가 다시 지휘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보스턴 명문인 뉴잉글랜드 음악원(NEC)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지휘 공부를 했다. 그는 “말러의 교향곡도 NEC에 들어간 뒤에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 뒤 스위스 취리히 예술대에서 지휘 공부를 계속하면서 명지휘자 파보 예르비와 구스타보 두다멜의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는 “예르비에게는 지휘 테크닉과 함께 단원들의 다양한 개성을 조율하는 법, 두다멜에게는 두려움이나 강압 없이 단원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내년부터 노르웨이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살아 있는 현대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꾸준하게 발굴·조명하는 것이 꿈”이라며 “한국에서도 지휘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