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미(美)를 시켜주십시오! 제발요.”

지난 13일 TV조선 ‘미스터트롯3’ 결승전 최종 진·선·미 발표 무대. MC 김성주가 ‘진(眞)’ 후보 중 한 명인 천록담(44·본명 이정희)에게 “기분이 어떻냐. 미(美)도 괜찮으냐”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다. 마스터 점수 5위, 온라인 응원 투표 7위의 중간 순위 합산 6위. 천록담의 표현대로 “(상위권은) 아예 단념을 할” 법한 순위였다.

가수 천록담은 "트로트를 좋아해 '미스터트롯1'때부터 나가고픈 생각이 있었다"면서 "트로트 부르면서 무대를 즐기다 보니, 이제서야 제 옷을 입은 것같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백두산 천지부터 한라산 백록담까지 노래로 가득 채우겠다”는 각오로 지은 예명 ‘천록담’의 기운이 전국에 뻗친 것일까. 최종 순위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실시간 국민 투표에서 김용빈(44만여 표)-손빈아(34만여 표)에 이어 27만여 표의 3위를 기록하며 단번에 최종 3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데뷔 24년 차 R&B(리듬앤드블루스) 스타 ‘이정’에서 트로트 가수 ‘천록담’으로 변신한 뒤 도전한 ‘첫 신고식’에서 거둔 성과. 트로트 0년 경력이지만, 데스매치·대장전 등 주요 라운드를 압도하며 두 번 연속 진(眞)에 올랐다. 경연 아닌 ‘천록담 콘서트’라는 후기도 쏟아졌다.

그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트로트 가수로서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나온 무대가 아니라, ‘트로트 가수로 살겠다’고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라며 “평생 이렇게 노래 연습을 많이 해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저처럼 R&B 좀 한다는 친구들이 ‘미스터트롯’ 경연에 나와 보면,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지 철저히 깨닫고 갈 겁니다. 감정선은 둘째치고 호흡으로 조절하며 음의 고저를 변화시킨다든지, 민요에서 차용한 리듬이나 창법 같은 기술적 컨트롤이 훨씬 어렵더군요. 마스터들에게 매를 좀 맞은 것(혹평)이 저에겐 특효약이 됐습니다.”

결승전에서 요동쳤던 그의 순위처럼, 트로트 가수 천록담이 탄생하기까지 인생도 들쑥날쑥했다. 가수이자 예능감까지 겸비한 스타로 인정받았지만, 2014년 제주도에 자리 잡으면서 연예계와 거리를 끊다시피 했다. 자신을 거의 학대하는 수준으로 문신도 했다. 얼굴, 두피, 목뒤까지 이어졌다. “방송에 나가지 않겠다는 치기로 철딱서니 없는 고통을 준 거죠. 방송에서 문신 노출은 금지니까요.” 조금 정신을 차린 뒤 카페를 비롯해 각종 사업에 도전했지만, 손에 잡히는 건 이익보다 손해였다. 3년 전 결혼해 신혼을 한창 즐길 이듬해, 신장암(1기) 진단을 받았다. 4cm 정도의 악성 종양이 몸에 자라고 있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전 그냥 죽은 삶이었을 겁니다. 아내에게 의지하며 완치 판정을 받았고, 다시 노래할 의지도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뭘 하겠다면 아내가 다 말리는데, ‘미스터트롯3’는 꼭 나가보라 하더군요. 하, 하.” 암과 싸우면서 문신도 하나씩 지워 나갔다. “지우는 게 1000배는 더 아팠습니다. 인생곡으로 고른 나훈아 선생님의 ‘공’ 가사처럼 잠시 머물다 갈 세상에서, 살다 보니 ‘비운다’는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경연 첫 무대를 나훈아의 ‘어매’로, 마지막을 역시 나훈아의 ‘공’으로 고른 건 트로트 가수 천록담의 출사표이기도 하다. “나훈아 선생님 같은 대가수는 못 되더라도, 내공을 쌓아서 그 비슷하게만이라도 가보자는 각오입니다.” 매 경연곡을 스스로 편곡했다는 그는 “제 무대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거나 ‘저절로 웃음이 난다’는 등의 말씀이 큰 힘이 됐다”면서 “트로트가 제게 행복을 선사했던 것처럼 밝은 분위기의 곡 위주로 부르고, 또 만들어 나가면서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